7:25-40 없는 자같이

저는 여러분들에게 세상에 욕심 내지 말고 세상에 소망 두지 말고 살아라는 말을 설교할 때마다 했습니다. 왜 이 말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명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는 나사로 같이 거지로 살아도 마지막에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그런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때때로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하나 구원에서 누락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제가 설교를 바르게 한 것 때문에 여러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것을 도구로 삼아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찾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이 일에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석교회만이 아니라 누구든 저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배우고자 한다면 저는 거절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저의 마음과 일치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저와 함께 한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서만 힘쓰자는 것입니다. 다른데는 관심 두지 말고 매이지도 말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관심 두고 그리스도에게만 매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매이지 않고 세상에 매이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싫어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껄끄럽게 생각하고 믿음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해 버립니다. 그 마지막이 뭐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세상에 매이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을 지적해야 하고 책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자가 있을 때 하나님이 내 곁에 그런 자를 붙여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파수군의 역할을 할 자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 받고 책망을 받는다면 그것을 감사하십시오.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바라보게 하는 말씀이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원하시고 그 시간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로 세상을 살고자 원하는 신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세상에 매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것을 목표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중에 돈이 얼마가 있건, 자식이 공부를 잘하건, 회사에서 지위가 높건 낮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수중에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수중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손에 내가 사랑하는 세상 것이 없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러분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따로 소중한 것을 감추어 놓고 있기 때문에 거짓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의 것이 얼마가 있든 없는 자같이 살아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고 합니다(29-31). 왜 그렇게 하라고 합니까? 31절 하반절에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이 이유 때문에 있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살아라고 합니다. 세상의 형적이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아내도 자식도 남편도 모두 포함된 것이 세상의 형적입니다.

세상은 마치 난로 옆의 눈과 같습니다. 심판 때면 다 사라지고 흔적도 없는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마음두고 세상에 매인다면 하나님의 약속에는 관심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에 마음을 두고 살아왔던 자라고 할지라도 세상에 뭔가 마음둘 만한 것이 생긴다면 그 순간 약속에 대해서는 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결혼을 그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혼자일 때는 하나님의 관심두며 살던 자가 결혼을 하면 아내에게 매이고 남편에게 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만 매여서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23절에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입니다. 마귀의 소유에서 하나님의 소유로 옮김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는 죽음이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는 안전지대로 옮김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신 손을 놓지 않으시고 가지 못하게 하실 때 우리는 그만 울어버립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있는 손을 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가운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외면해 버립니다. 왠지 천국간 나사로보다는 지옥간 부자 쪽에 더 관심이 가고 매력이 있는 것이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값주고 사셨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때문에 신자는 항상 마지막 때를 기억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기억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처녀 총각은 결혼이 목적이고, 장사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매매를 잘해서 돈버는 것이 목적이고, 자기 뜻대로 일이 잘 풀려서 즐겁게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형적을 따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마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의 모습을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데 정신팔려서 멸망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김으로 인해서 마지막 때를 잊어버리는 산 것을 말합니다. 신자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은 기도원에 파묻혀서 기도만 하고 교회에만 붙어서 예배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에 매여버린채 인생을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면 결혼에 매여버린채 살아갑니다. 바울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은 결혼을 하지 말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바울은 결혼의 여부보다는 세상에 매여 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시집가고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가지 차이점은 말합니다. 결혼을 하면 그만큼 고난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자기를 붙드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고난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없을 고난이 결혼을 함으로써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난을 안받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자는 또 다른 것에 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길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을 해도 결혼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전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주고 사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 것이 하나 주어지면 거기에 매여버리는 약한 모습만 보여왔습니다. 결혼하니까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재미에 빠져버리고, 자식을 낳고 나니까 자식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져 버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아내를 기쁘게 하고 자식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그런 모습만 보여왔습니다. 바울은 그럴려거든 차라리 결혼하지 마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사람이거든 거기에 매이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청년들 신앙은 믿지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청년 때에는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교회만 관심 두는 것 같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믿음도 뒷전이고 교회도 뒷전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저도 청년들의 신앙은 신뢰를 안하는 편입니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을 때에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나중에 직장에 매이고, 남편에 매이고 아내에 매이게 되면 그 믿음의 바탕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결혼을 하려거든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하지 말고 고난받기 위해서 결혼하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께 매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외에는 다 끊어버리십시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에 매여 삽니까? 아내에 매여 있고 직장에 매여 있고 사업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이 직장에 매이게 되면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업에 매이면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자식에 매이면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대신 불평과 원망만이 여러분들의 마음이 자리할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보다 교회에 매이게 되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담임목사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일 부지런히 하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땀흘리고, 인품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온갖 가식과 위선은 다 동원하고, 많이 배운 목사가 되기 위해서 돈을 들여서 박사 학위를 따옵니다. 교인들의 비위는 건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그러다 보니 설교할 때도 누구에게 걸릴만한 말은 다 빼버리고 누군가가 좋아할 말을 집어넣으면서 교회를 자기 사유화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외에는 매이지 말라고 합니다. 목사라는 직책에도 장로라는 직책에도 매이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매여 삽니까? 아니면 하나님대신 다른 것이 여러분을 붙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은 다 잘라내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주님만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을 아내에게 남편에게 보여주며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