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예배 설교때 신앙생활이란 무엇을 하고 안하고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즉 어떤 행위 자체를 기준으로 삼아서 신앙의 여부를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절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기준을 따로 세워 두시지 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할 때 성도는 서로의 신앙의 모습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이자 지금 우리들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장부터 10장까지는 우상 제물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우상 제물에 대해서 취한 행동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니까 먹으면 안된다'는 입장의 신자들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기 때문에 우상은 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 앞에 바쳤다고 해서 음식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 먹어도 괜찮다'는 입장의 신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입장의 신자들이 서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은 제물을 먹는 신자들을 신앙이 없는 것으로 비판하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먹어도 된다고 하는 신자들은 우상을 신으로 알고 제물을 먹지 못하는 신자들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로 비판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믿음이 없는 자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먹는 것이 옳다' '먹지 않는 것이 옳다'라는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흔히 신자들이 이런 문제에 접하게 되면 거의 모두가 자신의 성경 지식에 의해서 답을 내리게 됩니다. 우상에 민감한 사람은 먹지 마라고 말할 것이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먹어도 된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신자가 목사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거의가 이런 차원의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주일을 성경적으로 말을 했다고 합시다. 주일은 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흔히 질문을 하는 것은 '목사님 그러면 주일에 음식을 사먹어도 됩니까?'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오랫동안 어떤 굴레에 싸여서 신앙생활을 해온 단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질문의 잘못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깨닫게 된 신앙의 자유를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의식이 아니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그럼 예배에 빠져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는 헌금에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라고 하면 '그럼 헌금을 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생각이 내 몸과 내 인생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기쁨과 내 욕심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데서 나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내 기준을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서 주장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상 제물을 먹지 마라고 한 사람들도 하나님을 내세웠을 것이고, 먹어도 괜찮다고 한 사람들도 하나님을 내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다 자기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 신앙을 주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우상 제물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적으로 잘한 일이 아니며, 또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우상 제물을 먹고 안먹고에 신앙의 기준을 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4절-6절을 보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자유롭게 먹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어서 모든 사람이 그러한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9절에서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느냐 안먹느냐를 가지고 죄로 따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아니며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죄가 되는 것은 형제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 이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자유 때문에 믿음이 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상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뭐가 우상입니까? 우상은 절간에 세워놓은 돌부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점을 치고,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는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상의 전부라면 지금 모든 교회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상을 이정도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제물을 먹고 안먹고에 죄의 여부를 두고 있지만 바울은 형제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을 죄로 봅니다. 즉 바울이 뜻하는 우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면서도 '제사 음식 안먹는다'는 것을 가지고 신앙을 자랑하고, 또는 마음대로 먹는 것을 가지고 지식이 있는 차원 높은 신앙이라고 자랑하는 모두가 교만이라고 책망합니다. 1절에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봐도 신앙이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지식적인 차원에 매이다 보니 양보할 것을 양보하지 못하고 결국 다툼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어떤 규칙을 지키는 일에 더 열심을 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8절에 보면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상 제물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먹어도, 먹지 않아도 구원에는 어떤 보탬도 되지 못하고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 말은 우상 제물을 먹느냐 마느냐가 신자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중요하게 말합니까?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13절에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도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서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안먹는다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자기의 편함을 위해서 사용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서 형제가 받을 유익이 무 엇인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자유를 사용함으로 형제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사랑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무엇을 양보해야 할지, 무엇을 절제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교회에 와서도 우리 마음대로 내 편한 쪽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신자는 성경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지식이 없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식에 사랑이 없으면 교만이 됩니다. 자신의 지식에 미치지 못한 형제에게 자기의 지식에 이르도록 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사랑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지식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수준에 자라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술, 담배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 죄의 문제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정서는 신자는 술 담배를 안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이 약한 신자에게 술, 담배는 신앙상 방해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잊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형제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말한마디도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이라면 끄집어 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단단한 기준으로 서 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