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6 머리

부부싸움을 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하나같이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웠다. 도대체 왜 싸웠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굳이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도 능히 아시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부부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하지만 꼭 싸울 수밖에 없었던 싸움을 한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양보하고 덮어주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문제들도 자존심 때문에, 지기 싫어서 싸움으로 나가는 경우가 전부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전혀 모른 채 세상을 살아갑니다. 허깨비를 쫓아가는 것입니다. 오전에 말씀드린 대로 무엇인가를 가지면 자신의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세상의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삽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헛된 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세상을 산다면 저는 한마디로 '어리석다'라는 말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제가 아무리 헛된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정작 많은 분들이 결코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만큼은 저의 말에 동의되시기를 바랍니다. 억지로 강요한다고 이해되는 문제가 아니지만 목사인 저의 입장으로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한마음으로 이 말씀을 대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헛되다고 하신 것이 나의 눈에도 헛된 것으로 보여져야 하고, 하나님이 어리석다고 하신 것도 나의 눈에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이러한 신자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헛된 것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라고 고집을 피운다면 하나님이 주신 진짜 소중한 것에 어떻게 마음을 둘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제공해 주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큰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그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할 때 그 슬픔과 고통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즐거움이던 것이 자기를 떠난 것에 대한 분노이고 슬픔입니다. 돈이 즐거움이고 힘이었다면 돈이 자기에게서 사라졌을 때 세상을 살아갈 힘도 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대접해주는 그런 재미에 교회를 나오고 세상을 살았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욕을 먹고 무시를 당하고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섭섭함과 실망과 큰 분노 속에서 자신도 같이 욕을 하고 미워하고 공격하면서 다시금 잃어버린 즐거움의 조건을 회복시키려고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았을 때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힘쓰게 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오해 때문에 다른 형제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해로 인해서 자신에게 오는 칭찬이 사라지고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대접받지 못하게 되는 두려움 때문에 오해를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린 그럴 때마다 내가 과연 그동안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무엇 때문에 즐거워했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으로 인한 즐거움이 우리의 삶을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민감해 하고 마음 상하고 스트레스 받게 되고 그것이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땅의 문제 때문에 마음 상한 것이 있고 근심과 걱정과 슬픔에 빠진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 자신이 쓸데없는 것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임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없다고 해서, 사라졌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고 그것은 모두 헛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기대를 걸고 살았던 나 자신의 문제임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은데서 찾지 마시고 낮추어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낮은 자리에서 발견한 그 은혜를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행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자 입장에 계신 분들에게는 상당히 듣기 싫고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분위기가 여자는 남자의 종으로 여기는 것 같고 남자의 말에는 꼼짝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자분들이 이 본문을 보면서 뭔가 기분 나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참고 있는 것이라면 관심이 엉뚱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지금 하늘만 바라보아야 할 입장입니다. 우린 죽은 자이고 생명은 하늘에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 나 자신의 옆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비교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느냐가 소중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저런데 나는 왜 이렇습니까?'라면서 자존심 상해하고 섭섭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심을 구원에 두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생명에 두고 있다면 하나님이 여자의 머리로 남자를 두셨다는 것이 기분 나빠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셨다는 것은 여자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것도 아니고 남자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는 위고 여자는 아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구원의 도구로서 남자를 있게 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를 구원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구원의 고리를 의미합니다. 머리를 주장하는 자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머리는 돕고 희생하는 역할입니다. 남자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희생하시고 도우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희생의 자리에서 여자의 구원을 돕는 것입니다. 결국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쓴다는 것은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관심의 문제입니다. 구원에 관심을 두고 산다면 자신의 위치나 지위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서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구원에 관심을 둔 자로서 구원받은 모습을 머리의 역할과 다스림 받는 여자의 역할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에서의 남녀의 차이를 두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은 '나는 구원받은 자입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남자나 여자나 이 의미를 바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남자로서 여자를 무시하는 것은 머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듯이 남자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머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구원을 돕기 위해서 희생의 자리에서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머리로서의 남자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잘난 구석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자보다 신앙이 좋아서 머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남자가 먼저 났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다는 창조 질서 안에서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얻은 모습을 서로의 책임과 역할을 통해서 보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남자에게 더 큰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구원을 도와야 하고 한 가정의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이 일에 대해서 힘을 다해야 합니다.

남자 여자, 즉 부부의 관계에서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구원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원에 관심을 두지 못할 때 부부의 관계는 싸움이 이어질 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관심을 두고 산다면 여자는 남자는 머리로 알고 섬기고, 남자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여자를 돕는 일에 힘을 쓸것이라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남자를 섬기면서 '나는 구원받은 자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생명이지 세상에서의 내 위치가 아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 쓸데없는 것 때문에 싸움까지 번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은 자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구원에 있고, 소중한 것은 생명임을 아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자연히 부모를 통해서 신앙을 배워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에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