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3 사랑

지난 시간에 한 몸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결국 몸을 위해서 지체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된 신자의 관계도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즉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한 몸된 관계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체는 서로 능력도 다르고 은사도 다르다고 할지라도 서로를 비교하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몸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자기를 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고전 13장이 바로 사랑을 말합니다. 13장은 흔히 사랑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본문은 단지 성도들에게 사랑하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은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가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만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모두 쓸모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존재로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사라는 것은 보통 생각하듯이 방언이나, 병고치는 것과 같은 특별한 현상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은사입니다. 하지만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31절에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더욱 큰 은사, 제일 좋은 길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사랑입니다.

한 몸의 관계는 같은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한 몸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체와 지체에는 서로 연결되는 고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것도 사랑이고, 신자가 서로 하나되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의 우정, 부모 형제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아름다운 말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과 능력, 산을 옮기는 믿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내 몸까지 불사르는 열정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흔적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보이려고만 애씁니다. 내 열정, 내 믿음, 내 것을 드러내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자기 열정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해서 자기 사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서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해도 주님을 위해서 하십니까? 주님을 위해서 한다면 자기 만족과 자기 보람은 빠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내 교회를 위한 것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내 교회를 위한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결국 자기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4-7절까지의 사랑의 모습도 결국 주님을 위한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참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온유한 것도 주님을 위해서,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그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사랑입니다. 11절에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합니다.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자기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말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깨닫고,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어린아이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항상 자기 한 몸만 생각하며 자기를 위해서만 살아가던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난 후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고, 자기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신자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있어야 하고, 여러분이 모이는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는 장차 우리가 주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을 만날 자가 우리들이라면 바로 지금부터 주님을 만난 자로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사모하며 사십니까?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의 교양과 인격과 인간관계로 만들어 내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살려고 하십시오. 그것이 한 몸입니다.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 사랑 앞에서 우린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사랑에 빚진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그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랑을 아신다면 여러분은 주님 때문에 참게 될 것이고, 주님 때문에 온유해 질 것이고, 주님 때문에 자랑하지 않고, 주님 때문에 교만하지 않으며, 주님 때문에 무례히 행치 않을 것이고, 주님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주님 때문에 성내지 않고, 주님 때문에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 때문에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주님 때문에 언제나 진리를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주님을 위하는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해도, 말씀을 가르쳐도, 병을 고쳐도, 무엇을 해도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교만을 앞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길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과연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며 장성한 사람으로 달라져 가는지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신 것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사랑의 흔적으로 서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은사를 받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내가 과연 그렇게 사는지 자신을 점검하는 귀한 말씀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