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7-40 적당과 질서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잘못 이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회 가는 이유는 신자되기 위해서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되기 위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되기 위해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이미 신자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되기 위해서 교회 간다는 것은 아직까지 신자가 안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데 자녀가 되보기 위해서 교회 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한 이유는 분명히 성경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자녀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라고 못박아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신자를 만들어 내는 신자 양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양성소도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신자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신자가 되어서 교회에 와야 합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신자가 되어서 교회에 와야 한다면 그러면 어디 가서 신자가 되느냐는 의문이 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죄인을 신자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자가 되는 방법도 없습니다. 신자가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일이시지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인위적인 어떤 노력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죄인이 신자되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은 신자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이기 때문에 모인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 교회에서는 소위 신자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거의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기도하고, 예배 잘드리고, 십일조 잘하고, 전도 잘하면 유능한 신자로 대우받는 것이 요즘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신자로 되어지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일이신 데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신자가 되어버리니까 결국 성령님께서 하실 일이 없어져 버린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물론 인간이 무엇을 해도 그것으로 신자될 수 없습니다. 다만 유능하고 재주 있는 종교인이 양성되어질 뿐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교회로 모일 때마다 확인해야 하는 것은 '과연 내가 신자로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느냐?'를 묻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셔서 그 다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도 하게 하시고 헌금도 하게 하시고 예배도 드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신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크게 보여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것을 위해서는 세상 것을 다 빼앗아가도 좋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세상 것에 더 매여있다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이 단지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배드린다고 배워지는 것입니까?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을 해도 신자로서 하시라는 것입니다. 기도도 신자로서 하시고 헌금도 신자로서 하시고 봉사도 신자로서 하시면 무엇을 해도 기쁨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가득차 있을 것이고, 교회는 아무런 불화나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시끄럽고 다툼이 있는 것은 뭔가 하는 것은 산더미 같이 많은데 그 모든 일이 신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종교인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은사가 풍부했던 고린도 교회가 만약 신자의 자리에서 은사를 나타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종교인의 자리에서 은사를 나타내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시기와 다툼과 파벌과 경쟁이었습니다. 신자의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한다면 앞서려고 다투지도 않을 것이고 남 잘한다고 시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경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만들어 낸 교회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종교집단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가운데 생각할 것도 은석교회가 과연 성령으로 세워진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느냐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신자로서 이 자리에 모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 개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관심 두기보다는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교회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보면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앞에 나온 모든 말씀들의 결론과 같은 것입니다. 적당과 질서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적당이라는 것은 멈출 때에 멈출 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적당과 질서가 없을 때 그 교회는 서로 은사 받았고 계시 받았다고 설치고 싸우고 다투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3절에도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방언하고 통역하고 계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하기를 서로 다투지 말고 적당하게 질서대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교통신호 지키듯이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적당과 질서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자기를 과시하지 않고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앞서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내가 더 많이 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많이 하게 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적당과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세우신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인간의 모임으로 전락시켰을 때 교회는 조직화되고 제도화되어서 서로 힘을 겨루고 좀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기를 쓰는 교회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러한 인간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데, 그 방법은 말씀, 즉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심은 계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게시를 벗어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교회는 계시에 대한 뜨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모든 관심을 두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이미 그 속에 게시에 대한 열망을 지닌 채 나오게 되는 것이고, 계시가 목사를 통해서 전달되어질 때 순종하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37,38절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스스로 자신들을 선지자로 또는 신령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말하는 것을 주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의 말이 아니라 주의 명령을 전하고 있는데 이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의 명령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그들은 말씀을 알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바울도 그들을 선지자로 인정하지도 않고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하지도 않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명령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신령한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신령한 신자라면 여러분은 말씀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주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계시를 아는 신령한 신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인가가 주어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맡은 것입니다. 말을 해도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린 오직 나에게 맡긴 분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신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과시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높아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주님만 높아지면 우리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적당과 질서를 가져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