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24 주님의 삶

지난 시간에는 성경이 세상을 둘로 나누어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이라고 구분해서 말을 해도 별 심각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아담 안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담 안의 사람인지 그리스도 안의 사람인지 확인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단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판단해 버립니다.

그러나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은 교회에 다니는 여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따라가면 아담 안이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아담을 따라가는 것이고 무엇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한 채 다만 이것이 하나님이라 하면 그쪽으로 우르르 몰리고, 이것이 신앙이라고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신앙 아닌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아담 안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담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행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생각하는 대로 우리가 잘하면 천국에 가고 못하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은 누구를 따라가느냐로 결정됩니다. 아담을 따라가는 자는 그 뒤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는 뒤에서 아무리 못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이란 누구를 따라가느냐의 싸움이지 신앙적인 일을 얼마나 하느냐의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났느냐 못났느냐는 것은 구원과 하등에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항상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고 실망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에 대해서 낙심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능성을 두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했으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실망은 하면서 그리스도는 바라보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이고 낙심에 불과합니다. 뛰어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춤으로서 당당하게 남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실제 삶이 그 욕구를 따라가지 못할 때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실망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주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또 따로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채워야 할 주님의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두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홀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린 단지 주님이 하신 일을 감사하면서 주님의 뒤만 따라가면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신 길에 서서 예수님의 뒤만 따라가면 예수님의 부활의 나라가 우리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도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우깁니다. 믿음은 행하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으니까 행함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신자에게 있어야 할 행함은 주님 가신 그 길에 나의 전 인생을 던지는 결단 외에는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야고보 사도의 행함도 종교적인 행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에 자신을 던지는 결단으로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없고서는 그것을 어떻게 믿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주님의 뒤를 따라간가는 것은 좋은 길과 나쁜 길을 골라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육신에 고통이 되는 힘든 길이라도 가야하는 것이 주님의 길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길만 골라서 가려고 하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우기고 있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고집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을 따라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즉 인간의 삶의 방식은 자기를 위해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기를 위한 인생을 살고 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아담을 따라가는 인생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담처럼 살지 마시고 주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대로 사람은 신앙을 비교할 때 꼭 옆사람과 비교합니다. 그럴 때 신앙에 대해서 변명을 하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했을 때 '아무개는 나보다 더 못합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변명하고 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신앙의 기준은 옆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하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완벽한 인간 되기 위해서 힘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을 도와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신자들이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은 구하지 않고 구힐 필요성이 없는 것만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라는 것은 예수님 앞에서 언제나 신앙에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신앙의 푯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종교적인 몇가지 행함을 제시하고 실천하라고 강조하다보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할수록 자신의 신앙 없음이 가려지고 따라서 주님께 신앙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구할 필요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실정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준으로 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4절에 보면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시고 누구를 위해서 사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신 것입니다. 나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일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의 하나하나가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게 바치기 위해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일하십니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바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직장을 다니고 자식을 키우고 살아갑니까?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봉사합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라는 답을 내린다면 과연 잘못된 답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의 실상 그대로입니다.

우린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하면서 예수님과는 너무 동떨어진 신앙생활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을 남발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아무리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하고 충성을 했다고 해도 예수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기 보람과 자기 기쁨을 채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길입니다.

여기서 우린 다시 한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나를 보면 아담의 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믿음을 기대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신앙생활을 도우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셨으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을 바라십니다. 신앙생활이든 뭐든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안의 생각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얻었고 모았기 때문에 자기의 것으로 여겨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서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것은 그 생각자체부터 이미 하나님께 반역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4절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의 정사, 권세,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정사, 권세, 능력은 멸망 받아야 할 예수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멸망할 그 원수가 우리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을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교회가 힘을 축척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세상의 권세와 힘을 발판으로 해서 멋있는 인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원수이며 아담을 따르는 것이고 장차 멸망 받을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기 위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의 삶도 역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를 위한 삶에서 벗어나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믿음의 부족함을 구하십시오. 신앙의 힘이 없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한순간도 주님의 길에 설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깨닫고 날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외면치 않으시고 필히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길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주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힘이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