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4 신자의 삶

오늘은 고린도전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성경을 한 부분 마칠 때마다 제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여러분들이 무엇을 배웠느냐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부터 16장까지 설교를 했지만 과연 여러분들이 그 설교를 통해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가 저를 무척 궁금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입니다. 제가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면서 저의 마음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신자는 세상과 다른 사람이다. 때문에 신자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계획과 소망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15장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를 영원한 나라를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더러운 자에서 깨끗한 자가 되게 하시고 죽은 자에게서 영원히 사는 자가 되게 하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산다는 것은 결국 다시 사는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 나라가 전부가 아니라 영원히 살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합니다. 부활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사를 천국을 유업을 받을 수 없는 쓸데없는 세상에 두지 말고 주님의 일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망하고 사라져 버릴 세상에 연연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연연하지 말라고 해서 세상을 떠나라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을 버리고 공부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에서 사는 것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16장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점을 말하면서 부활을 바라보고 믿는자로서 세상에 매이지 말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일이 무엇인가는 16장에서 언급하면서 고린도전서를 마치고 있습니다.

먼저 1-4를 보면 연보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매주일 첫날, 즉 오늘날 주일에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고 합니다. 저축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에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는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곤란에 처해 있었고 구제해야 할 대상이 많았습니다. 그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매주일 첫날에 이익을 저축해 두는 것이 곧 부활을 맞이하는 사람이 힘써 살아가야 할 주의 일인 것입니다.

세상은 쓸데없고 돈은 더러우니까 돈도 벌지 말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그 목적들이 내가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착한 일과 어려운 자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헌금은 대부분이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허비되고 있고, 단지 교회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돈으로 구제를 한다고 하고는 있지만 사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헌금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헌금은 어려운 자를 돕고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전혀 없이 단지 의무감과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바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헌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신자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것은 세상의 일로 인해서 마음 흔들리지 말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부활을 바라고 사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부활이 그 마음속에 뿌리 깊이 살아 있다면 사라질 세상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일을 많이 해라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해도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분쟁과 분파가 있었고,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했고, 자체 내에 다툼이 있어서 서로 송사 하는 일까지 있었고, 음행이라는 죄를 그냥 묵인하기도 했고, 이혼의 문제도 있었으며, 서로의 은사를 자랑하고 우월감을 내세우는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한마디로 집약합니다. 그것은 곧 고린도 교회가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기 때문이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한다해도 단지 돈을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그 마음 자세가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해도 전도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사랑이 곧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초점을 행위에 두지 말고 그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오직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라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과 복수심과 개인적인 우월감과 사소한 감정을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법칙에 매이지 않을 때 그순간 자기의 것을 앞세우게 됩니다. 자존심을 앞세우게 되고 우월감을 앞세우게 되고 복수심을 앞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믿는자입니다. 부활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으로 기뻐하고 세상의 썩어질 혈과 육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신자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어려운 자를 돕기 위해서 헌금하고 주의 일에 힘쓰고 믿음에 굳게 서서 나에게 어떤 손해가 온다고 해도 남자답게 강건하게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을 해도 사랑으로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22절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씀이 곧 고린도전서의 결론이 될 수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결과는 저주입니다. 멸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린 아직 주를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말고 다른 것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나는 주님을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자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이 속에 자리하는 신자라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말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즐거움을 만인에게 전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면서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통해서 증거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부활을 아는 신자가 살아야 할 마땅한 모습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