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강) 삼상 17:41-50 다윗의 승리

<본문>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삼상 17:41-50)

<설교>

본문을 보면 어린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이기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나도 다윗과 같이 승리할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즉 다윗의 승리를 통해서 믿음이 없이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살았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 책망을 받고 부끄러워하는 것보다는 승리 자체를 부러워하고만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기골이 장대하고 힘있는 장수 골리앗을 이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희열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닙니까? 세상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스라엘을 구한 사람으로 높임 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승리에는 영광이 따라오기 때문에 이 영광이 내 것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에서 다윗과 같은 승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승리라는 결과만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승리’라고 하는 결과만을 좋아할 뿐 다윗이 승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설사 다윗이 승리하게 된 이유에 관심을 둔다 한들 그것 역시 다윗과 같은 승리를 얻고자 하는 욕심에 의한 것일 뿐 다윗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다윗처럼 하면 나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다윗이 어떻게 했는가를 살피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윗의 승리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승리를 세상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골리앗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승리에 대한 이해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골리앗을 세상의 힘있는 존재, 나를 억누르고 나보다 힘센 세상의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가 이해하는 승리는 내가 그보다 더 힘센 존재가 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업종에 있으면서 자신보다 더 큰 사업체를 가진 사람을 골리앗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은 자신을 다윗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상대방보다 작다는 것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과연 무엇을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승리로 이해하겠습니까? 분명 경쟁에서 자신보다 큰 업체를 이기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의 승리는 그러한 승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그러한 승리를 약속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다윗의 승리는 그 내용 자체는 신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교훈으로 받아들일 뿐 다윗의 승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내용은 현실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그 내용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지만 지금도 성경에서와 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교훈으로 머물러 버리는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도 이러한 시각으로 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성경의 옛날이야기 정도로 대접받고 마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윗의 위인전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승리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신앙인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의 신자로 세상에 머물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하게 합니다. 즉 ‘다윗은 믿음으로 승리했다. 우리도 믿음으로 다윗처럼 승리하자’가 아니라 ‘다윗은 믿음으로 승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이처럼 우리의 현재적인 모습을 점검하게 하는 것이 다윗의 승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윗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에게 있는 것이 우리에게 없고 다윗이 바라보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지 못하고 다윗이 믿고 의지하는 것을 우리가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골리앗을 외형으로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라는 시각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36절에 보면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수 없다고 말리는 사울에게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있었고 할례 없는 골리앗과 자신을 다른 존재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만약 자신과 골리앗을 외형으로 비교하고 판단했다면 사울과 이스라엘처럼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힘에 있어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골리앗은 단지 할례 없는 존재로 보였을 뿐입니다. 할례 없는 존재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골리앗을 바라보는 다윗의 시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기준으로 해서 오직 둘로 구분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음을 믿으면서 자신의 심령에 피의 은혜를 두고 사는 사람과 예수의 피가 아닌 세상의 힘을 마음에 두면서 힘이 제일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구원할 자와 심판할 자를 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저 사람은 돈이 많다’ ‘저 사람은 권력이 많다’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가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가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힘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기준으로 대한다면 세상의 힘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현대 신앙인의 약점은 천국을 말하되 천국을 소망하는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천국과 세상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세상을 바라보고, 천국은 죽음 후에 들어갈 세계로만 인식합니다. 때문에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이 현실에서는 전혀 힘을 드러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말하되 여전히 돈과 권력을 힘으로 여기며 그러한 힘을 가진 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산 것 천국에서 보상받자는 심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 없는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할례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할례 없다는 것은 전혀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골리앗이 할례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할례 있는 사람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세상이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 믿는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조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갈등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믿음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결국 ‘예수 믿어도 별 것 없다’는 낙심과 함께 예수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일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다윗은 달랐던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키가 크고 힘이 센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고 심판해 버리시는 할례 없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즉 골리앗 위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45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말합니다.

골리앗은 오직 자신의 힘을 믿고 나올 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자신을 이길 자가 없다고 여기고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큰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위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지 않을 때는 세상의 힘을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힘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힘으로 자신을 과시합니다.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힘없는 자는 세상의 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다’고 큰소리칩니다. 여러분,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 과연 무기입니까?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골리앗이 다윗의 말을 듣고 다윗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까? 눈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은 자신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장수가 등장해야 두려움을 가질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모든 군사가 자기 앞에서 쩔쩔매지 못하고 있는데 어린 소년이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 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세상에서 아무리 예수님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해도 세상은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말하는 믿음도 예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이름도 세상을 두렵게 하지를 못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고 믿음에 대해 회의를 가지기 쉽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말에 대해 골리앗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이 골리앗을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승리를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의 이야기를 골리앗보다 더 센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믿으면 골리앗보다 더 힘센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비록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지만, 다윗이 칼을 들고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서는 분명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 다윗 그대로일 뿐이지 다윗이 힘센 장수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47절에 보면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세워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은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칼과 창이 전쟁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전쟁을 승리하게도 패배하게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전쟁의 군사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군대는 내 손에 쥐어진 칼과 창을 의지하고 싸움에 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골리앗을 앞에 두고 두려워 쩔쩔매는 나약한 모습으로 남게 될 뿐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다윗입니다. 어린애도 이긴 골리앗을 우리가 못이겨서 부끄럽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 믿음 없는 모습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물매와 돌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물매와 돌은 다윗이 양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입니다. 즉 다윗은 골리앗을 단지 하나님의 군대를 해롭게 하는 짐승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리 힘이 있고 강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으면 그는 멸망의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대적자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위에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골리앗과 같은 존재 앞에서 다만 두려움을 가질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나약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까? 세상의 것이 하늘나라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힘을 의지하고 힘을 원하는 순간 여러분에게는 수없이 많은 골리앗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세우셔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의지하고 믿는다면 골리앗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보인다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멸망의 자식들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선물이었음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골리앗 같은 자가 큰소리치며 삽니다. 그러나 그 앞에 기죽지 마십시오. 힘없는 다윗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기죽을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십시오. 분명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