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강) 삼상 30:1-10 다윗을 탄핵하는 사람들

<본문>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 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사무엘상 30:1-10)

<설교>

국가는 지도자를 요구하며 지도자에게는 지도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지도력은 국가의 번영과 발전으로 평가되기 마련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할지라도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거나 차질에 생겼을 경우 지도자는 지도력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백성의 비난을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경영이 무엇이며 경제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도 국가의 정세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마치 경제와 정치의 전문가라도 되는 양 저마다 제 목소리를 높입니다.

본래 여론은 정보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판단에서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정보가 부족하고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낮추고 정확한 사실을 먼저 찾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느낌과 두려움과 분위기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결국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백성들이 지도자를 문제 삼고 비난을 하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눈앞에 닥친 상황을 타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대표로 세워 놓은 지도자를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과 지도자는 사실 타협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성은 지도자에게 합법적 권력을 부여하고 백성들로서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대신 지도자는 국가를 잘 경영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어떤 위기감이 느껴진다면 결국 화살은 지도자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이러한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에 제기되어 있는 ‘대통령 탄핵’과 그것을 두고 백성들 사이에서 높여지는 비난의 목소리들이 바로 그러한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을 한 야당들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국가 경제 파탄 등의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그동안도 백성들 사이에서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분위기가 많았지만 야당은 아예 탄핵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서 대통령의 지도력을 비난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잠깐 언급한 대로 저는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또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라는 문제로 성도들이 서로 토론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옳은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탄핵을 한 사람들이나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이나 모두 그들 중심에는 자신의 유익만 존재할 뿐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을 바라보고 사는 그 어떤 인간도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옳은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우리를 살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뿐입니다.

제가 대통령의 탄핵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탄핵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대통령이 옳다는 말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인간과 현대인의 문제점을 비교함으로써 수천 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단절되어 있는 관계 속에서 변하지 않고 흘러오고 있는 인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문제점에서 우리의 잘못됨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서 오직 자신을 위해 달려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들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는 지혜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성경이 있는 것이고, 성경의 내용이 어떤 교훈적 가르침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있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경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심으로써 그들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한 치의 달라짐이 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본문의 이스라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블레셋 편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 밖에 없는 위기상황에 처한 다윗이 갑자기 블레셋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다윗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반발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계속되어 있는 다윗의 불신앙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도우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보시고 잘 한 사람만을 도우시는 분이 아님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상식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임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상식이라는 것은 삶에서 경험하고 학습하여 형성되어진 것임을 생각한다면 상식을 기초로 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크게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지난 시간에 이어 블레셋 땅으로 돌아왔을 때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2절을 보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 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돌아가라’고 한 아기스의 말대로 자신이 살던 블레셋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이미 아말렉 사람의 침략을 받은 후였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집을 비웠을 때를 아말렉 사람들이 노린 것 같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거기 있던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여기에는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같은 상황에서 다윗의 주변 사람들이 다윗에게 행한 태도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의 이같은 모습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6절에 보면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다윗에게 돌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의 책임이 다윗에게 있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생각할 때는 블레셋의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비우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거슬러 올라가서 애당초 다윗이 블레셋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을 비웠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도자로서의 실수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백성들은 다윗을 탄핵의 대상으로 여긴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은 다만 지도자인 다윗의 명령에만 따랐을 뿐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국 명령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도가가 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동일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현 사회는 원칙 없이 행동하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분명한 원칙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지 느낌과 두려움과 감정에 의해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여건 등을 고려해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규범은 단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규범을 내세우기도 하고 묵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에게서도 예외 없이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성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다윗을 돌로 치자고 했던 백성들이 나중에 어떻게 변하는가 보십시오. 20절에 보면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8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아멜렉을 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쫓아가서 치게 되고 결국 승리하여 아말렉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시 찾고 오히려 아말렉의 양떼와 소떼를 모두 탈취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백성들이 다윗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던 사람들의 변함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것이 바로 원칙이 없이 다만 느낌과 감정과 분위기에 의해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좋으면 웃고 나쁘면 분노하는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현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탄핵을 두고 사람들은 다만 자신의 느낌과 불안감등으로 나쁘다고 비난하고 여론은 그렇게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다윗을 돌로 치고자 한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난 하다가도 만약 대통령의 정책들이 국가에 유익이 되고 백성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대통령을 높이는 분위기로 당장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실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인간미가 풍기는 것으로 변모되어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좋을 때는 좋게 느껴지고 나쁠 때는 좋은 것도 나쁘게 느끼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도 지도자라고 일컫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를 바라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목사의 지도력은 무엇으로 증거 되겠습니까? 분명 교회의 발전과 부흥으로 증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면 목사의 모든 것이 좋게 되고 교회가 부흥되지 못하면 목사에게는 비난의 눈초리만 남을 뿐입니다. 모든 일의 책임은 지도자인 목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기 위해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의 문제는 다윗을 비난하고 돌로 치려고 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다윗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것을 탈취하였을 때도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고 하면서 다윗을 높이고 있을 뿐이지 다윗과 함께 하시고 다윗을 도우신 하나님은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말렉의 침략이 과연 다윗의 책임입니까? 다윗이 블레셋으로 가지만 않았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이 말은 우리가 바르게만 행동하고 살아가면 재난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말입니까? ‘그럼 다윗의 책임이아니라면 백성의 책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책임입니까?’라고 묻고 싶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물음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일이 너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선호하는 우리의 욕심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육신에 좋은 것만을 바라볼 뿐 현재는 나쁘게 보이는 일이 결국에는 큰 유익으로 남을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오늘 좋았던 일이 내일에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무엇을 좋고 무엇을 나쁘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신자가 끝까지 바라보며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살피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익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라면 지금 당장 나에게 나쁘다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누구의 책임을 묻거나 비난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유익을 찾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십시오. 분명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잘만하면 나쁜 일은 얼마든지 피하며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이것은 크나큰 교만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분위기에 휘말려서는 안됩니다. 신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기준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나를 바라보게 되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라는 생각과 함께 후회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신자로서 정당한 길을 가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에 서 있다면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 때문이다’라는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자로서 최선의 삶입니다.

아말렉에 의해서 아내와 자녀를 빼앗긴 당시의 상황에서는 슬픔과 낙심과 다윗에 대한 분노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회복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도자인 다윗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그에게 분노를 행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회복할 수 없었던 상황은 하나님에 의해서 거뜬히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돌로 칠 생각을 했던 자들이 탈취물을 나누면서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며 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울다가 웃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좋으면 웃고 나쁘면 슬퍼하는 전형적인 불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의 생각은 항상 하나님으로 굳건히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과 원칙으로 하여 일관성이 있는 진리의 길만을 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 말하는 것 모두가 나의 느낌과 판단과 감정을 의존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형성된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장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직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해 일하시고 도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편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빠졌을 때 다윗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알았다면 갈등할 필요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주변 상황과 형편을 보면서 안전을 느끼고 인지하지만 신자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안전은 우리의 감각적 기능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근심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동원하여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신자에게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안전함을 주변 여건과 상황을 통해서 확인하였을 때 안심하는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무엇이 불안하십니까? 되어진 일을 보니까 낙심이 되고 불안합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일이 장래에 어떤 결과 어떤 열매를 맺을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모르신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신자답게 살아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을 탄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문제에서 오늘 우리의 문제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을 탄핵하던 사람들이 다시 다윗을 환호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시고 그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살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 나의 이야기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롬 8:28절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