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디모데전서 3:14-16  하나님의 집

 

<본문>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디모데전서 3:14-16)



<설교>

15절을 보면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한 하나님의 집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축물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처소를 뜻하는 것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건물은 아무리 화려하게 지었다고 해도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 콘크리트 모래 철근 등등을 이용하여 만든 건축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처소인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라고 일컫는다면 그 사람은 진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음을 스스로 증거 하는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것을 참되다고 증거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만을 참되고 의로운 것으로 증거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살고 진리 안에 머무는 신자라면 자연히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하나님의 집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인 것이고, 오직 진리만을 굳게 세우는 기둥과 터로써 존재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집을 우습게 여기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진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기에 진리의 기둥과 터로 세워진 하나님의 집 자체를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심을 두는 자로 산다면, 하나님의 집, 즉 ‘교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민감해 하고 하나님의 집에서 내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집이 커지고 발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교회로 모이는 신자의 할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에서 신자가 행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앞서 말하고 있는 감독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말하는 것은, 교회에서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 ‘자격 없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감독이나 집사가 자기에 대해 감독의 자격도 집사의 자격도 없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까?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사람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고 분쟁과 다툼과 서로 선생이 되고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고 분쟁이 있고 서로 선생이 되고자 하는 것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활개치고 있습니다. ‘나는 감독이다’ ‘나는 집사다’는 우월감을 내세우면 다른 이의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함으로써 누구도 감독될 만한 사람은 없고 집사 될 만한 사람도 없음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인간의 열심과 행위로 인정을 받고 자신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집에서 행해야 할 신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나타낼 것은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반대로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더 집착하고 자신의 우월감과 자존심을 챙기는 일에 바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인간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신자는 불의한 자로서 무능력하고 연약한 자로 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함에서 경쟁이나 분쟁은 나타나지 않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경건의 비밀을 큰 것으로 일컫습니다. 이처럼 참으로 크다 일컬음을 받는 경건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이 세상에서 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경건의 비밀을 아는 자,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고 교회로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크다고 일컬음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지체로 모인 모두에게 동일한 것입니다.



크다고 일컬음 받는 관계 안에서 또 다시 누가 더 큰가라는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큰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가 큰 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 안에서 누가 더 큰 자인가를 따질 수 없고,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동일한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집에서 행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큰 자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집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지키고 유지하는 교회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인간은 동일할 뿐입니다. 누가 누구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경건의 비밀을 진심으로 깨달았고 경건의 비밀을 그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살아갑니다.



100평 아파트에서 살든 10평 셋방에서 살든 인간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경건의 비밀을 알지 못한 세상은 그러한 것으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좋은 집에 살고 많은 것을 소유했다는 것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사람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교회에 흘러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경건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신자는 서로를 하나님의 집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경건의 비밀을 아는 신자다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의 사고방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집에서 세상의 사고방식을 나타낸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집을 허무는 원수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이 그리스도라면, 신자가 경건하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믿음 자체가 세상에 대해서는 감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믿음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안다고 해봐야 자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신을 믿어주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신을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진리로 인해서 진리를 위해 세워진 집입니다. 신자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써 만나는 것입니다. 진리 때문에 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해 세움 받고 만나서 교회라는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진 것인데 그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행할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날마다 물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자에게는 진리 외의 다른 것은 모두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결코 진리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다.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나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자신부터 자신을 하나님의 집으로, 진리의 기둥과 터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로만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하나님의 집이라는 관계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히 행할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경건의 비밀이 곧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임을 깨닫고 그 사랑에 취한 자로서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만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