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디모데전서 4:1-5  거짓말 하는 자

 

<본문>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디모데전서 4:1-5)



<설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고침 받고 달라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나와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은 대개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를 부흥시키고 많은 일을 하며 능력을 가진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가는 자를 뜻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있다면, 분명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도 외면하지 않고 가게 되는 사람으로 고쳐달라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해 버리고 불만을 가진다면 그것은 이미 그 마음에 말씀에 대한 순종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고침 받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할 뿐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한다면 진리가 아닌 거짓말도 진리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진리와 진리를 모방한 거짓말을 분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인간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에게 머물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거나 그리스도를 신앙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고쳐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고칠 수 있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신자에게 인간의 잘됨을 위한 모든 것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간의 잘됨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잘됨은 물론 육신의 잘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아는 신자에게는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인간의 잘됨이나 교회의 잘됨, 즉 세상적인 시각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연결하는 말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으로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심각성은 바로 이러한 거짓말에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발생한 심각한 문제는 거짓말 하는 자들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만약 은석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까? 가벼운 것입니까? 문구상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여겨질 것입니다. 귀신의 가르침, 거짓말하는 자라는 문구들이 마치 교회에 무당 같은 사람이 들어오고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는 자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하는 자들이 전한 귀신의 가르침은 3절을 보면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것입니다. 즉 평생 혼인을 하지 말고 살 것을 가르치고, 구약처럼 더럽고 부정한 음식을 규정하여 그러한 것들을 먹지 말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가르침이 교회에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십니까? 어쩌면 그러한 가르침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무엇 때문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것을 귀신의 가르침으로, 그리고 거짓말 하는 자들의 거짓말로 규정하는 것입니까?



문제는 단순히 혼인을 하지 않는 것, 식물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한 행동에 의와 거룩의 의미를 담는 것입니다.



혼인을 하지 않거나 식물을 금하는 것은 금욕주의를 말합니다. 즉 인간 편에서 뭔가 금지함으로써 의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건으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구별된 신앙으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과 차별된 신앙이 있을 때 타인이 받지 못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의 당위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신앙이 다른데 축복을 똑같이 받을 수 없다는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하늘의 복을 계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심각한 귀신의 가르침이며 거짓말 하는 자들의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양심에 화인 맞은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의가 아니라 인간의 의를 바라보게 하는 가르침을 귀신의 가르침으로, 미혹하는 영으로, 거짓말하는 것으로 말하면서 아주 심각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어떻습니까? 인간의 금욕과 노력으로 의를 얻고, 그 의를 바탕으로 타인과 차별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교회를 허물어뜨리는 귀신의 가르침으로, 진리를 가리고 미혹하는 거짓말로 여겨지십니까?



아니면 그러한 말들이 왜 잘못된 말들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결과입니다.



내 속에 주님이 계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이 계시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족됨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모든 영광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 받으시면 되는 것이고, 높임도 내가 아니라 예수님께 돌아가면 되는 것이고, 내게 능력이 없어도 예수님께 능력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자랑도 내가 아니라 주님께 돌아감이 마땅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안계시기에 내가 있게 되고, 결국 주님께 돌아가야 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돌리고자 하게 되고, 자신이 높임 받고 영광 받으며 능력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과 다른 신앙을 보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것, 거짓말 하는 자들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내 속에 살아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대신 나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신앙을 가져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말합니다. 거룩은 인간의 노력과 금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씀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거룩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5절을 그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그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고 자신이 살아있는 결과일 뿐입니다. 자신이 살아있기에 자신의 종교적 행동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내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하는 기도가 힘이 되어서 나를 거룩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기도는 자신을 부인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우심만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는 의가 없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신자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이 믿음 안에만 있으면 아무런 부족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하는 자는 이 진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믿음에 합당한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믿음을 차별해 버립니다. 바울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훼방하는 귀신의 가르침에 불과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공로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고 의지하신다면 무엇이 거짓말인지, 무엇이 여러분을 미혹하는 사단의 말인지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