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디모데전서 4:6-8  선한 일군

 

<본문>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6-8)



<설교>

6절을 보면 ‘예수의 선한 일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군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일군을 교회를 위해 일하는 존재로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일군을 달라고 기도하기도 하는데, 그 의도는 교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그런 인물이 교회에 많이 들어오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군과 교회의 발전을 연결 짓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재물도 아끼지 않고 교회를 위해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교회의 발전을 위한 일군일 뿐이지 ‘예수의 선한 일군’이라고는 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목사를 위한 일군도, 교회를 위한 일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면 예수님을 위한 예수의 선한 일군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를 위한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교회, 즉 기독교라는 종교 단체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으로 여기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몸이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발전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교회의 발전을 꾀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회됨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여러분은 ‘선한 일군’이라는 말을 대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선한 일군은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꼭 우리의 뇌리를 스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러면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움직이면서 선한 일군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뭔가 갚아주시는 것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살았으니까 그에 대한 보답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흠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던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대우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을 받아 누리셨습니까?



말씀대로 움직이고 행했던, 말 그대로 예수의 선한 일군으로 살았던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중에 말씀으로 산 것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혜택을 받고 잘 산 사람이 있습니까? 전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선한 일군이란 단지 말씀이 지시한 대로 움직이고 전하라고 한 것을 전할 뿐이지 그에 대한 다른 결과와 자기에게 돌아올 혜택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선한 일군으로 세우신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온유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라는 것일 뿐이지 믿음을 앞세워서 자신을 위한 뭔가를 받아 챙기라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주님을 위해 일했는데도 왜 이런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신을 바라본 결과일 뿐입니다.



6절을 보면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형제를 깨우치는 이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앞에서 말한 내용, 즉 바른 믿음과 진리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즉 깨우침이란 바른 믿음과 진리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선한 일군으로서 할 일은 사람을 설득하여 교회로 데려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과 진리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일군으로써 바른 믿음과 진리로 살아갈 때 그것으로 인해 형제들이 양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양육하는 사람과 양육 받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대개 목사를 양육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신자는 목사에 의해 양육 받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목사가 신자를 어떻게 양육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욕망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목사가 어떻게 누구를 양육한다는 것입니까?



양육하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른 교훈과 진리를 전하는 선한 일군을 세우셔서 바른 교훈과 진리로 자기 백성을 부지런히 양육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목사는 양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른 교훈과 진리를 전하면서 그 말씀에 의해 자기 자신도 양육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전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 진리를 전한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은 보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는 선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교회의 분쟁은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선생의 자리에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설교할 때 ‘너는 잘하냐?’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바른 교훈을 전하는 목사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예수님의 진리만을 전하고자 힘씁니다. 따라서 바른 교훈을 전하는 목사는 자신이 전하는 교훈으로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즉 자신도 말씀에 의해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는 자로 전하기에 자연히 신자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자신이 잘 지키고 행하는 것을 내세워 설교한다면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당신들은 왜 못하는가?’라는 식으로 당당함을 가지고 나무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목사 앞에서 주눅이 들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는 말씀으로 인한 양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선한 일군이란 그리스도의 교훈을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전하면서 자신 역시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인해 양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함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교훈을 받고 다스림을 받으며 양육을 받는 관계에 있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잘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볼 때는 잘한다고 생각했다 할지라도 말씀 앞에 서게 되면 나 또한 멸망의 자식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목사든 신자든 우리 모두는 동일한 말씀에 의해 가르침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말합니다. 3:16절에서 경건의 비밀을 그리스도로 말하는 것을 보면, 경건이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연습은 어떤 일을 숙달하고 잘하기 위해 계속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것은, 항상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에 거하기를 힘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습이 없다면 내 생각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어떤 일에 부딪히면 믿음에 아주 서툰 모습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고 실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생각만 가지고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착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면서, 주어지는 모든 삶에서 말씀에 의해 다스림 받고 양육 받고 있음을 나타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선한 일군입니다.



8절을 보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연습에 약간의 유익은 있을 것입니다. 약간의 유익이란 금생에서 주어지는 유익을 뜻합니다. 육체의 연습이 건강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인간의 행함이든 그 모든 것은 금생에서 약간 유익을 얻는 것으로 그칠 뿐, 내생의 약속은 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 금생에서부터 내생에까지 약속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믿음으로 사는 일에 모든 힘을 쏟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무엇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가 고민하면서 믿음이 이끄는 길에 순종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선한 일군은 오직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진리를 전하면서 듣는 자와 전하는 자 모두가 함께 영원한 그리스도의 세계에 소속되어 있음을 날마다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습을 부지런히 하시면서 자신이 속한 곳이 어디인가를 확인하면서 그리스도 편에만 서서 살아가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