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디모데전서 6:13-16  하나님은

 

<본문>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디모데전서 6:13-16)



<설교>

신자는 누구든 예수님은 의로우신 분이고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의를 가지고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을 절대로 의로운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직 죄인이라는 고백으로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관계에서는 ‘죄인’이라는 고백이 사라진 채 의를 가지고 경쟁하고 비교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의로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기 때문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나는 예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당에서나 찾는 분이고 세상에서의 삶은 나 홀로 살아간다는 의식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때와 시간, 장소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의로운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신자에게서는 어디서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의 삶은 항상 하나님 앞과 예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실제 눈으로 보며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베푸시는 세계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의 흔적임을 알았기에 바울은 어디를 가든 하나님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만물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앞’이라는 말을 합니다. 세상 만물이 살아가는 것이 모두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만물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곧 악이 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하는데, 사람이 돈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은 없으면 안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돈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해준다고 생각하기에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곧 나를 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 말한 믿음의 선한 싸움은 만물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과의 충돌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이 없다는 것은, 만물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는 대로 살겠다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 없기에 자신의 욕망과의 충돌도 없는 것이고, 선한 싸움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합니다. 빌라도를 향하여 하신 예수님의 선한 증거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위한 증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만 증거하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선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1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명령을 지키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명령을 지키는 자로 사는 것은,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영생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영생을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라면, 날마다 나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족한 줄을 알고 살아갈 것이고, 이런 믿음에서는 부하려고 하는 것도 없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돈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15-16절을 보면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라고 말합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라는 말씀처럼 세상에서 죽지 아니함이라는 것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자신을 죽지 않을 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죽지 않음을 믿는 신자라면 그의 삶은 자연히 영생을 취하는 것으로 향할 것입니다. 오직 영생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것이지 세상은 결코 죽음에 처한 자를 건질 수도 구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마음을 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잘살고 못사는 자신에게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이고, 결국 잘사는 것으로 교만하게 되고 못산다는 것으로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나를 살게 하시는 주님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영원히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아무리 잘산다고 해도 영생을 향하는 삶이 아니라면 결국 멸망으로 끝날 뿐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눈이 뜨인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약이 이르면 주님은 분명히 오십니다. 그때까지 죽음이 없는 예수님을 소망하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신자로 하여금 돈을 사랑치 않게 하는 것이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렇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구할 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영생을 향해 달려가는 삶입니다. 인생을 목적을 바르게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 순간은 인생의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세상의 결국은 기약이 이르면 주님이 오시는 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복된 삶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되시고 홀로 한분이신 능하신 분이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고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신 그리스도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복된 인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하나님이 정하신 기약이 이를 때가 있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날이 끝이고 그때는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세상 전부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영생을 추구하는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오직 돈 벌어 잘 사는 것이 인생에서 최고 복된 것으로 여겨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심판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신자로서 과연 무엇을 좇고 살아야 하는가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의 승리를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자가 추구할 것은 영생 밖에 없기에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 역시 영생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만 소망하고 인내하면서 주님의 은혜만 증거하다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하고 신뢰하는 신자라면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이고,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복된 삶이기에 신자는 세상 다른 것이 없다고 해도 주님만으로 전혀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모든 비결은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말하는 자로서 참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세상이 사는 대로 무작정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가에 대해 마음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마음이 붙들리기를 소원하시면서 영원히 사는 길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것, 영원한 것을 구하십시오. 돈으로 모든 것이 갖춰지고 채워지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의 피로 이뤄지는 삶을 원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믿는 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