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인생 (고후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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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보배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보배란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 생명이 질그릇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해서 그릇 자체가 변화되고 바꿔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깊이 인식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쓸데없이 신앙이 자라가기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헛된 일에 마음 뺏기지 않을 것입니다. 질그릇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담겨져 있다는 것은 그릇 자체를 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담은 그릇이기에 이제부터 할 일은 생명을 드러내는 것임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저기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선택받았다는 것이 질그릇 안에 생명을 가진 자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질그릇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명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질그릇의 인생은 질그릇인 자기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의 존귀를 위해서 땀흘리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보배를 가진 질그릇은 결코 질그릇된 자기를 드러내어서는 안됩니다. 보배, 그리스도의 생명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자기 부인이라고 말하고, 사도 바울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졌다고 말합니다. 나는 죽고 죽은 그 현장에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산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몸은 비록 썩어질 몸 그대로 이지만 내 안에 마음은 옛날 질그릇으로 살았던 그때의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나는 죽고 예수 안에서 다시 산다는 의미이고, 거듭난다는 것이고,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듯입니다. 옛날과 똑같은 인간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천국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인간으로서 오로지 세상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인간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으로 삽니다. 때문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예수님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자연히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마이크 대고 큰소리로 동네방네 떠든다고 해도 예수님의 생명이 보이지 않고 옛날 인간의 모습만 보여진다면 여전히 자기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자는 아닙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갈 때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닥친다고 해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승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예수의 생명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지고지순한 윤리적인 삶을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고개를 돌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에 모든 관심과 마음을 집중한 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사실 때 보여주신 것은 세상에는 머리둘 곳도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결코 부자와 권력과 명예를 가질 능력이 없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보이신 능력만 활용해도 세상으로부터 떠받듦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시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도 모두가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이 그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세상에 보여야 할 것은 주님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세상에 매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생명을 가진 증거는 한마디로 세상이 좋은가 천국이 좋은가입니다. 천국만 소망하는 자로서 살아가면 예수의 생명을 가진 신자이지만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세상을 가슴에 품고 세상 것이 더 좋은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예수의 생명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뇌물 받고 간음하는 것 등은 죄라고 여기면서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지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는 십계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4계명에 보면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주일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4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가르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식일은 노동을 쉬는 날입니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 노동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 없는 영원히 쉬는 나라, 즉 영원히 안식을 누리는 천국을 바라보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노동을 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뭐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행복과 축복을 마음에 품고 살면서, 세상 것이 없다고 해도 근심하지 않고 천국으로 위로 받으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이 안된다고 해서 낙심하고 원망하고 세상 것이 없다고 해서 기가 죽어 살아간다면 과연 그것이 노동이 없는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신자의 모습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등의 계명과 함께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살인한 것이나 동일한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세상에 매인 채 살아가는 것은 살인하는 죄와 같은 것이 됩니다.

너무 비약된 논리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도적질이나 살인, 탐내는 것, 간음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은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저지르는 범죄가 아닙니까? 즉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속에서 그런 범죄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해서 욕심이 없다면 도적질, 살인, 강도, 거짓말, 간음 등을 행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이 전부인줄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더렵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신자라고 해도 세상에 욕심을 두고 살아갈 때 신자도 불신자와 한통속이 되어서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땅을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기뻐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세상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여러분의 희망으로 삼고 삶의 기쁨으로 삼고 인생의 보람으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생의 희망이요 보람이 아니라 자식이 잘되는 것이 희망이요 보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고 살인과 똑같은 죄악 가운데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망할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합니다. 겉사람은 육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속은 예수의 생명이 주어진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세상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 겉사람을 위한 것입니까 속사람을 위한 것입니까. 모두가 겉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겉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한들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갈수록 후패해져 갈 뿐입니다. 후패해져 가는 겉사람을 세상 것이 막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이 있는 속은 날로 새로워져 갑니다. 때문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신자는 겉사람에 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늙었든 못생겼든 그러한 것들이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난도 잠시 받는 것으로 여기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면서 넉넉하게 이겨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살기가 힘듭니까? 한숨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까? 나사로의 인생과 비교하시면서 한숨을 떨쳐버리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이 남아 있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잠시 잠깐 있는 것 때문에 믿음이 자리에서 실패한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