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요한이서 1:4-6 장로의 기쁨

<본문>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한이서 1:4-6)

<설교>

많은 교회가 교회의 교회됨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사회적인 사업, 즉 구제, 또는 환경운동 등등에 치우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선한 사업으로 인정하는 것을 통하여 교회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됨을 증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제에 힘쓰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제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교회됨은 구제로 증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교회됨은 교회가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교회의 교회됨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을 참된 교회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이 높임을 받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진리를 알지 못한 세상이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이처럼 진리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한 세상이 눈에 보이는 교회의 자그마한 착한 일을 가지고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거대한 착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칭찬과 참된 교회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됨은 오직 진리로 증거됩니다. 진리를 떠나 있는 교회는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종교단체일 뿐입니다. 이점을 생각하며 교회로 모이는 우리의 관심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는 장로의 관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장로의 관심은 진리였습니다. 2절의 말씀대로 진리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교회됨은 오직 진리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중심으로 모일 때 기쁨은 자연히 주어집니다. 4절을 보면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한 장로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장로의 기쁨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것이 보였을 때 누렸던 것입니다. 장로의 기쁨은 오직 진리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되고,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짓는 것들이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진리에 행하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이러한 장로의 기쁨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너희는 무엇으로 기뻐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교회로 모여서 여러분이 누리고 맛보시는 기쁨은 무엇으로 인한 것입니까? 오늘 우리의 관심이 무엇에 치중되어 있는가를 알게 하는 소중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기쁨은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거리로 인한 것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형제가 진리 가운데 거하는 것이 보일 때 그것이 여러분의 기쁨으로 다가왔습니까? 아니 이것부터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형제가 진리에 행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형제가 진리에 거한다고 해도 그것이 기쁨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귀하고 좋은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진리에 거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타인의 진리에 대해 관심을 두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신자라 이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로의 기쁨을 두고 지금껏 교회에서의 나의 기쁨이 무엇이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진리에 거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까? 교회가 대개 강조하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봉사와 기도, 주일 성수, 십일조 등등의 종교적 행함으로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씀을 하나하나 분류하여 말씀 하나하나를 지키는 것을 말씀을 따라 산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나님만 믿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안식일 지키고, 부모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는 등등을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3:9절의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많은 계명은 사랑으로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계명이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모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때 살인과 간음과 탐심이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거한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자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부적인 항목을 지키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즉 장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뭔가를 행해서 진리에 거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니 기쁘다는 말을 하고 이어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에게 기쁨이 된 진리에 행하는 것이 곧 사랑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거하는 것은 성경을 많이 읽거나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공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에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에 다스림을 받는다는 그 증거가 형제 사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십자가의 도가 아니겠습니까? 십자가의 도는 오직 예수님의 피만 의로운 것으로 부각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 즉 진리 앞에 선 인간이라면 그 어떤 일에서도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게 됩니다. 의로운 행함이 있는데 감추고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내세우고 자랑할 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악함을 깊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의로움이 큰 기쁨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가 기쁨이 된 신자라면 형제를 대할 때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죄인 됨을 알기에 형제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생각할 것이고, 자랑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바라보고 형제를 대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신자는 형제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보게 될 때 그것이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의 마음이었습니다.

만약 신자의 관계에 진리가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사랑의 관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친분을 찾게 될 것이고, 개인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가까이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멀리 하면서 진리가 없는 인간관계를 그대로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은석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채 교회로 모이고 있었는가를 깨닫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다움을 잃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다움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모든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진리가 나를 살렸다는 이 사실 하나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소원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의 교회다움은 자연 증거될 것이고, 여러분은 진리로 인해 무한한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스스로 의인이라 하는 자들에게는 쓸데없는 것이지만 죄인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을 향해 모든 죄를 없게 하셨다고 외치는 소식이야 말로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주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진리를 듣는 우리의 마음은 진리로 기뻐하기는커녕 눈길하나 주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진리로 기뻐하는 장로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우리 모두 진리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이 되기를 소원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오직 진리로 향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