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디모데후서 1:1-2  생명의 약속

 

<본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디모데후서 1:1-2)



<설교>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건 안하건 상관없이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주인으로 버젓이 존재하고 계십니다. 세상을 향해 ‘왜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느냐? 제발 인정해 달라’고 사정하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하나님이 세우신 말씀의 원칙을 따라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의 때가 되면 버림받는 것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역시 세상이 멸시하고 조롱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외면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때문에 신자는 세상의 반응에 대해 민감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무지하고 어리석고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할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이 외면하고 조롱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신자가 낙심하고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그 속셈을 의심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과연 그 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의 길에 서 있는 신자라면 세상에 대해 눈치 보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절대로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의 당연한 반응으로 여기면서 말씀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에만 모든 마음을 둘 뿐입니다.



1절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라는 구절을 보면 ‘생명의 약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생명의 약속이라는 것은, 약속이 곧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를 말할 때는 돈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시간은 돈이다’라는 옛말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돈에 빗대어 말합니다. 즉 돈을 사람들이 목적하는 참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으로 전제하고 시간이 곧 돈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말함으로써 시간의 중요함과 가치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면 ‘금융지식이 돈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역시 금융지식이 곧 돈이 되어 돌아오게 됨을 말함으로써 금융지식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뭔가의 가치를 말할 때는 세상이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연결하여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사도가 말하는 ‘생명의 약속’은 세상의 시각에서 볼 때는 전혀 가치 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약속은 전혀 돈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믿는 것이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돈도 안되는 것을...’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약속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쓸데없는 짓거리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의식에도 생명의 약속을 세상의 시각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사도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라고 말하면서,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을 참으로 중요하고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흥밋거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의 그런 말들이 내 육신의 문제에 보탬 되는 것이 전혀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귀함과 가치는 그 약속으로 인해서 사망에 있던 우리가 생명에 참예하게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생명에 대해서조차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목숨이 귀중할 뿐, 영혼의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설사 영혼의 생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세상에서 내가 잘되기 위해서라면 그 영혼의 생명마저 팔아버릴 수 있다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세계에서 사도라는 것은 불필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자신을 생명의 약속대로 사도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도의 일이 곧 생명의 약속을 전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생명의 약속의 기쁨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에게는 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교회로 오게 하고, 교회에 흥미를 갖게 함으로써 교회를 키워 보겠다는 의도나 관심이 아니라 사도 자신이 맛보고 누리고 있는 생명의 약속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재미가 있는 교회였겠습니까? 초대교회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하니까 초대교회는 사랑이 넘치고 그래서 재미있는 교회였겠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초대교회에는 자신의 것을 다 팔아 나누고 함께 통용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여러분께 과연 재미있는 일입니까? 과연 이런 교회를 원하시고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대단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 자신은 힘들지 않고, 자신은 포기하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도 없이 재미와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섬김과 희생을 내어 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내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를 원하고 사랑이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곧 교회도, 사랑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향한 기쁨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익과 재미를 위한 종교인의 모임일 뿐입니다.



신자는 돈 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세상에서 생명의 약속을 받은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자된 것은 생명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 속에서 세상이 보지 못한 기쁨이 있으며 세상이 알지 못한 세계가 있으며 세상이 맛보지 못한 가치 있는 세계가 있음을 증거할 자로 부름 받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참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름으로써 디모데와의 관계를 좀 더 친밀감이 있는 관계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약속 안에서의 관계입니다.



신자와 신자는 세상의 사람들이 사로 연결되어지는 조건과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생명의 약속만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바울에게 디모데가 사랑하는 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도 생명의 약속이라는 관계에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생명의 약속의 기쁨으로만 모인다면 그 교회는 자연히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모임으로써 훼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약속이 무엇보다 귀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에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 약속 밖에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생명의 약속 밖에 있다면 그것은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약속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멸망에 있는 우리를 구출하여 하늘의 생명에 참여한 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심으로써 멸망의 자식인 우리가 이처럼 놀라운 복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기쁨과 감사가 지금 여러분에게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