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디모데후서 1:3-8  고난을 받으라

 

<본문>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3-8)



<설교>

8절을 보면 사도는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 잘 믿고 복 받고 천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니 과연 이러한 말을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현대인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의 대부분은 ‘복’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자신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어려움에 대비해서 예수를 믿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힘을 써서 자신에게 오는 모든 재앙을 다 막아 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사도는 오히려 반대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과연 사도와 같은 복음을 선포한다면 사람들이 모일까요? 아마 어렵지 않겠습니까? 고난을 얘기한다고 해도 순수하게 고난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고난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토를 달아놔야 고난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래서 고난과 함께 복을 얘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 교회에서 십자가는 교회 부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치워 버리고 그 자리에 인간의 열심과 인간의 공로를 집어넣음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희망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에게 두고 있는 모든 희망과 가능성을 빼앗아 버립니다. 인간에게 희망을 두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유일한 소망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고난도 마다하지 않게 합니다. 자신이 고난의 길을 간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복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을 십자가 지신 예수만 믿어주면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를 고난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떠나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그냥 고생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복음과 상관없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고생으로 여긴다면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을 고난 받는 것으로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생을 의로운 것으로 착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고생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복음으로 살지 않는 것 같은 자격지심에 빠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고난을 육체적인 고생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육체적인 고생으로 여기게 되면, 자연히 고생을 하지 않고 편히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고난과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은, 복음을 알게 되었으면 사도처럼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복음이 복음을 받은 자를 고난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환경 문제로 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무엇이기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5절을 보면 사도는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6절을 보면 사도는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란 5절에서 언급한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는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한다면 7절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5절에서 말한 ‘거짓이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거짓이 없는 믿음은 7절에서 언급한 대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마음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다면 두려움이 있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마음이 없는 것은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주님의 능력에 붙들려 있고, 주님의 사랑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실 무엇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붙들고 있고, 사랑 아래 있는 것이 신자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주님의 능력에 대항하여 주님의 사랑을 끊어 버리고 신자를 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믿는다면 신자에게 두려움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이 없는 믿음은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으며 두려움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세상 무엇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긍휼을 받은 자입니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택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심히 감사하고 자랑해야 할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내어 놓지를 못합니다. 돈이 있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하면서 복 받은 자신을 마음껏 자랑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용서도 긍휼도 내어 놓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신자가 누리고 있는 것을 세상은 전혀 누리지를 못합니다. 신자가 받은 은사를 세상은 전혀 받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해 신자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가지고 있는 돈과 힘을 가지고 자신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비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향해서 ‘너희는 돈으로 사느냐? 나는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믿음으로 산다’ 이런 당당함이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당당하게 꺼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믿음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겠습니다. 믿음을 보고 ‘부럽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오직 자신보다 권세 있고 돈 있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숙일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믿음은 전혀 힘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 세상이 볼 때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돈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라는 존재는 이처럼 세상이 전혀 알아주지 않는 것을 세상 속에서 나타내고 증거할 사람으로 부름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내어 놓고 자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돈을 전부로 아는 사람들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믿음을 자랑하면서 부끄럽지 않고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육체적인 고통이나 고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전혀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는 것을 내어 놓으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힘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복음을 기뻐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거짓이 없는 믿음을 받은 신자가 가야할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살고 못사는 것을 묻지 않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실 뿐입니다. 내 속에 하나님이 주신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는가를 물으십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십자가의 은혜와 용서를 자랑하며 살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를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