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디모데후서 2:14-17 유익이 없는 일

 

<본문>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디모데후서 2:14-17)


<설교>

믿음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일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으로써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신자는 아무리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지고 다른 사람처럼 열심과 뜨거움이 없다고 해도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식으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대 교회에 있어서 믿음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할 믿음의 근거를 자기에게 두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현재의 모습과 형편과 주어지는 모든 것을 믿음과 연관시켜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근심을 하게 되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믿음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근거를 자신에게 둠으로써 믿음으로 인한 고난에 대해서도 마치 하나님께 벌을 받는 차원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고난이 없는 것을 믿음으로 인한 복의 결과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는 말을 함으로써, 신자에게 고난은 믿음에 의한 당연한 결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고난도 신자에게는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도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고 말합니다. 바울이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을 버립니다. 이것은 바울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믿음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의 대부분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축복으로 바꿔 버린 실정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기쁨을 제공하는 복음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즉 복음의 본질 자체가 변질됨으로써 다른 복음을 복음으로 위장하여 내어 놓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 없는 비복음으로 전락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16,17절에서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당시 에베소에 성행했던 거짓된 복음을 말합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지요. 3계명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르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망령되고 헛된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 것이기에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생명이며 빛입니다. 어둠에 붙들린 자를 해방시켜 빛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복음의 내용이며 본질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원하는 복음의 내용은 생명도 아니고 빛도 아닙니다.



애당초 생명이 관심이 아니고 빛이 관심이 아니며 자신의 삶이 모든 관심거리일 뿐입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직 자신이 관심의 전부인 사람들에는 생명의 문제는 관심 밖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의 욕망의 문제에만  착념할 뿐입니다.



14절을 보면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한 말다툼은 신화와 족보로 인해서 생겨난 것입니다(딤전1:4;4:7). 당시 교회 내에 침투해 있는 이단들의 가르침과 변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딤전 6:3-10).



바울은 당시 디모데가 시무하던 에베소 교회 내에 성행한 거짓 교사들이 계속해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변론이나 논쟁들을 금할 것을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다툼은 유익이 전혀 없고 오히려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유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를 깨닫게 하는 복음이 유익할 뿐이지, 인간을 잘되게 한다거나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말들은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말들은 듣는 자로 하여금 생명이 아닌 망하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자가 진리를 잘 분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변이 없다면 결국 듣기에 좋은 말, 감동이 되는 말, 위로가 되는 말 등을 무작정 진리로 여기고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입니까? 사도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즉 진리에 충성하고 진리에 헌신하는 것이야 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일한 것이 없고 공로가 없어서 부끄러운 일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동일합니다. 모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를 남겼든 상관없이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씀하고, 똑같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것을 말씀합니다. 남긴 액수를 따라 차별 대우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받은 대로 일한 것을 두고 충성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행위를 구분하고 공로를 구분하고 상을 구분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망령된 것입니다. 신자는 이것을 분변하면서 진리로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를 가르치고, 인간의 행함이 의가 되어서 그것으로 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가르치는 것들이 신자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에게서 행함을 이끌어 낼 수는 있을지언정 그리스도를 은혜를 아는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익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라면 진리에서 나오는 말과 인간의 욕망에서 나오는 말을 분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에서 나오는 것만을 마음에 두는 것이 여러분께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주님의 은혜만 증거합니다. 인간의 공로는 증거 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인간의 욕망 또한 용납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교회와 연관된 일이라고 해서 욕망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만족을 누리고, 자기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 모든 것은 자기 욕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이 진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에만 관심을 둔다면, 진리를 위장한 인간의 욕망을 분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에 관심이 없기에 진리와 인간의 욕망을 분변치 못하게 됩니다.



진리는 신자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닙니다. 거짓 복음일 뿐입니다. 내 욕심을 채워 주는 것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과 은혜를 아는 것으로 기쁨을 삼고자 하십시오. 그러면 진리를 분변하면서 유익이 없는 일을 버리며 복음 안에서 기쁨과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