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디모데후서 3:10-17  성경의 유익

 

<본문>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0-17)

 


<설교>

하나님이시면서도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죽으시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2-5절)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실상은 참으로 기가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떳떳하게 아무렇지 않게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실상 자기 사랑에 매인 모습임을 생각한다면 감히 그 사랑과 은혜를 언급조차 할 자격이 없는 것이 바로 우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붙드시면서 고치시고 생명으로 붙들어 놓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세상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크다는 고백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이 전부인 그의 나라를 구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의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음을 뜻합니다. 의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기에 죄에 대해서는 애통해하며 아파하기 마련입니다. 의가 미워하는 것은 곧 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악에 대해 전혀 감각이 없다면 그것은 악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고, 의를 향한 감각이 죽어있는 상태와 같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성경 읽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에 대한 감각이 죽은 자의 상태와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6,7절의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는 내용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욕심에 이끌려 성경을 배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요즘 교회에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세미나가 성행합니다. 이 세미나의 취지는 말씀대로 살면 가정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욕심에 이끌려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을 배움으로써 인간의 실상을 발견하고 내가 부인되어지고 낮아지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길로 이르고자 함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을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남겨 놓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가정 행복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교인들을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꾼으로 만들고 목사를 잘 섬기는 추종자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남겨 놓으셨겠습니까? 왜들 그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입니까? 이것이 자기 욕심으로 성경을 배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남겨 놓으신 것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실상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는 말을 합니다. 신자가 성경에서 배우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하면 복 받는다는 것입니까? 이러한 생각이 자기 욕심으로 성경을 배웠다는 증거입니다.



사도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할 일에 거하라는 권면을 하는 것은, 말씀을 전할 위치에 있는 디모데가 과연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말하지 말고 오직 성경에서 배우고 확신한 진리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속이는 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해서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으로 하와를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로 말씀을 가볍게 여기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결국 사탄의 유혹에 불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속이는 자들이 거짓된 진리를 말함에도 불구하고 속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배우고 확신할 일에 거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또 이런 말을 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알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서 성경이 디모데에게 있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가정의 행복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열심도 아니고 오직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성경을 배움으로 얻은 열매인 것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안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경을 배움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성경이 주는 유익인 것입니다.



16,17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익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열심과 지식으로도 온전함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온전해 질 수 있는 길은 온전한 분으로 세상에 오신 분을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분의 온전함으로 인해서 온전함의 혜택을 누리는 것만이 조인된 인간이 온전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고치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 하셨음을 알게 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만을 믿는 자로 고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온전함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게 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지 우리의 욕심을 이루어주기 위한 도구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욕심에 이끌려 성경을 배우고 듣기 때문에 성경이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도구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무엇을 배우십니까? 아니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이 여러분에 어떤 유익을 주기를 원합니까?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마음을 두고자 하는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대해 섭섭함을 가집니다. 왜 그럴까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배우는 것보다 욕심에 이끌려 성경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