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히브리서 6:4-6 신자의 책임

<본문>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브리서 6:4-6)

<설교>

성경에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는데 본문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된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타락을 한다면 두 번 다시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없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그러한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앞에서 말한 이해를 옹호할 만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선택에 의한 구원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경 처음부터 선택에 의해 인간이 구분되는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것은 오로지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을 선택하셨다는데 여기에 누가 의의를 걸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선택에 대해 기분나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공로가 묵살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도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것이 있는데 그러한 기회를 선택 사상이 박탈해 버리니 기분이 나쁠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선택의 의미입니다. 인간의 공로를 철저히 목살하고 파고드는 것이 하나님의 선택인 것입니다.

애당초 인간의 조건을 보지 않은 선택이기에 인간이 잘한다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잘해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한다고 해서 선택을 취소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선택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고, 또한 구원의 최소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본문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 믿게 된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즉 믿은 사람도 타락하면 구원이 취소되고, 또다시 믿고 구원 얻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식의 해석은 말씀 자체에 어긋나는 것이니 만큼 또 다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문구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말을 하고 있는 저자의 심정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식이 말썽을 피웠을 때 ‘너 한번만 더 그러면 쫓아낸다’는 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 말이 한번 도 그러면 실제로 쫓아 내버린다는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엄중한 꾸지람입니까? 답은 후자입니다.

본문의 말씀도 신자가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되고, 성령에 참예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사를 맛보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에 참예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그 마음을 깊이 생각하라는 의도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사를 말할 때 은사 자체에 매달릴 뿐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도외시 해버립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은사를 주셨을까?’ ‘은사를 주셔서 뭘 하려고 하신 것인가?’ 이처럼 하나님께 관심을 두기보다는 은사를 받은 자신을 높여 버릴 때 그것이야 말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며 욕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지금 우리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도 본문의 내용을 구원의 문제로 쉽게 연결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6장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본문은 이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의 초보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세례, 안수, 부활, 심판, 이 모든 것들이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산물들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의 초보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하늘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즉 생명의 빛을 공급받고 생명의 나라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그러한 은총을 베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중심으로 살아라는 것입니까?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을 신자다운 삶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것이 이유이겠습니까 아니면 신앙 또한 자기중심에서 자신을 위한 것으로 전락시키라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구원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은사를 맛보게 하신 것,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하신 것, 이 모든 것을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입니다.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으로 안주 해버리는 이것이 곧 도의 초보이며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가를 본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을 대하면서 ‘내가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타락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자기 중심이고 도의 초보이며. ‘나를 신자되게 하시고 은혜를 알게 하시고 성령에 참예하게 하신 것은 나를 그렇게 만드셔서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기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신자다운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대부분의 경우 뭐든 날 위해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 때문에 은혜를 달라고 할까요? 은혜를 받아서 뭘하겠다는 것입니까? 은혜를 나에게 세상의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여 은혜를 구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는 뻔합니다. 은혜 받음을 자기 편함과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버려야 할 도의 초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늘의 빛으로 비췸을 얻게 하시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하시고, 성령에 참예하게 하시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하신 뜻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기 위해 그러한 것들로 채우셨는데, 여전히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맛보게 하시고 베푸신 모든 것의 뜻을 묵살하고 짓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6절 뒤에 보면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신자가 아니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욕을 보인다는 것을 예수님을 배반하여 교회를 다니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욕하고 핍박하는 등의 행동으로 오인하기 때문에 나는 이 말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은 여전히 자기중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두고 한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두 번 못박는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헛되이 죽으신 것으로 만듦으로서 예수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전히 자기중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하셨다면 그 맛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맛보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맛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책임이 여러분께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자기중심에 머물러서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의 삶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은 욕보이는 것이 됨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뭔가 주시고 맛보게 하셨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뜻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여러분께 경고하고 있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음을 안다면 그 주신 것을 전하고 나누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신자다운 것이고 여러분의 할 일입니다. 이 일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마시고 소홀히 하지 않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