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강) 히브리서 10:1-4 그림자

<본문>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브리서 10:1-4)

<설교>

성경을 세상을 향한 욕망을 가지고 대한다면 그건 이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의도일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고 성경을 대한다면, 사사로이 자신의 욕망을 내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오직 선포일 뿐이지 타협도 아니고 부탁도 아닙니다.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이것이 아니면 아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과 상관이 없는 존재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대한다는 것은, 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처럼 욕망을 가지고 성경을 대하는 사람은 성경에 시큰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욕망으로 무장된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제사, 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백번 천번 제사를 드려도 안되는 것이 죄를 없게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죄사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 시큰둥하다면 그것은 뭔가 달리 원하는 것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처럼 율법이나 제사, 제물,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합니다. 즉 이것들은 실천이라는 자체적 요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구세주가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에 시선을 두지 말고 참되 형상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제사, 제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며 진정한 구세주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림자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를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서 율법대로 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왜 이토록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를 갖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시장에 서서 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왜 기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했을까요? 두말할 것이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신앙을 보여야 했고, 신앙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전부였던 것입니다.

율법은 신앙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신앙을 보여줄 눈에 보이는 기준이 없어서 난감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율법은 자신의 신앙적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자신 스스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하다는 확실성을 확인하는데도 율법은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는다 해도 행위가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등의 행위가 많이 보이는 사람을 신앙이 있는 것으로 높이는 것이 현대 교회의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교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율법이 말한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 제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요구는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알라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시키기 위해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아야 율법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럼 율법을 지키지 말란 말이냐?’라는 반발을 떠올리게 되는데,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지킬 수가 없는 것이고 율법이 요구한 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 누구도 없음을 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즉 제사도, 제물도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기능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제사를 드려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와 제물을 통해 흠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자신이 죄사함 받게 되었음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그것이 거룩한 신자인 것입니다.

만일 제물로 인해 온전케 될 수 있다면 반복해서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매년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율법으로 온전케 될 수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은 제물이 완전한 속죄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사드릴 때마다 자신의 죄를 의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를 드릴 때마다 용서 받아야 할 죄가 있는 자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해마다 계속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용서 받는다고 해도 제사를 마치고 나면 또 다시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죄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제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바치는 제물로는 죄를 없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없이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안계셨다면 이스라엘의 제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계속 반복되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제사와 제물은 효력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는 자로 살면 된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속죄의 능력과 은총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미 죄없는 자로 선언되는 의의 자리, 은총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에 대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마땅히 증거해야 할 복의 모습을 상실한 자로 살아가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예수 안에 있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인간의 본능은 죄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죄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단번에 죽으신 그 죽으심 때문에 죄가 나를 사망으로 끌어가지 못하는 놀라운 은총을 마음껏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속죄의 은총은 자신이 헤어날 수 없는 죄안에 있음을 뼈 속 깊이 자각하는 신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죄를 아는 자리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은총은 말 그대로 푸른 초장입니다. 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을 풍족히 얻는 것을 푸른 초장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자신의 죄를 보지 않는 자들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세상의 것을 아무리 풍족히 가진다고 해도 결국 멸망의 자식임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만을 바라보는 신자에게 푸른 초장은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은총 안에 거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족함이 없습니다. 자신을 보고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전혀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자리에 와 있음을 발견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림자를 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행하는 예배, 헌금, 기도, 봉사, 이런 것들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러한 것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귀한 생명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