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강) 히브리서 10:10-18 영원한 은혜

<본문>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0-18)

<설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때때로 참으로 번거롭게 일하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생각하자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만큼 예수님을 굳이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지 않아도 우리를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도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아들을 보내서 죽게 하시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입니까?

구약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8절을 보면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 것이란 제사와 예물 등 율법의 규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모두를 폐했다는 것입니다. 일부가 아닙니다. 전부입니다. 현대 교회가 구약의 안식일을 주일로 연계하여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구약의 십일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십일조를 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지만 사도는 분명 하나님은 첫 것을 폐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왕 폐하실 것을 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와 제물 바치는 것이 철저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자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잘못해서 첫 것을 폐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철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것을 폐하시는 것은 애당초 하나님은 제사와 제물 등 율법을 통해 기쁨을 얻을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 제물 등의 율법은 처음부터 폐지를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왕 폐지하실 것은 번거롭게 왜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둘째 것을 세우셔서 일하시면 안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은혜입니다. 어떤 은혜인가 하면 자기 몸을 드려 죽으신 분은 예수님인데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룩함을 입을만한 존재가 되지를 못하는데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 존재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은 일한 만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뭐든 열심히 한 사람이 신앙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당하다 여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받을만해서 받는 것이라면 받을만한 일을 해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것을 먼저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첫 것을 주심으로써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가능성을 무너뜨리시고 둘째 것을 세우셔서 인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게 하시고 은혜를 고백하게 하시는 것으로 기쁨을 얻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번거롭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잘 아시기에 때문에 너무나 강퍅하고 완고한 고집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한 치의 빈틈도 오차도 없는 구속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에서 기쁨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떤 일이 아들의 죽음과 비교할 만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에 대해 의심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행하신 의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무슨 일을 함으로써 복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은혜에서 멀어져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제사장이 매일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제사가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행한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제사를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이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제사를 드리도록 하신 것은 장차 둘째 것을 세우셨을 때 둘째 것의 가치가 어떠한가를 보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원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를 의미하겠습니까? 둘째 것의 가치를 보지 않고 첫째 것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있는 자에게 행함은 자연히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 행위를 신앙적 가치가 있는 행위로 규정하고 그 행위를 기준하여 신앙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15-16절을 보면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와 세우신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내 죄를 위해 가지고 나와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세우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말하면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도 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알았기에 자연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17-18절에서도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않으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우신 언약입니다. 그래서 다시 죄를 위해 제사드릴 것이 없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에서 믿음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은혜를 보지 않는 하나님의 원수된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의로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위가 우리의 의가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올 의는 없음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특정한 종교적 행위에 매달리지도 마십시오. 신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특정한 행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기에 어떤 일에서도 주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할 자는 죄사함의 기쁨을 아는 자일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믿고 은혜에 감사하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는 세상에 부러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