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강) 히브리서 11:5-6 믿음으로 에녹은

<본문>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5-6)

<설교>

여러분은 각기 나름대로 믿음을 안다고 여기고 있고, 또 믿음이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소리치고 또 믿음으로 산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결국 헛된 삶일 뿐입니다.

마 7:22-23절의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는 말씀을 봐도 아무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선언을 들을 사람도 있음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앞세우고, 믿음을 앞세운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으며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믿음의 인물들을 내세워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우리 자신을 점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아벨을 통해 나타난 믿음은 구별이었습니다.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 아벨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벨의 제물에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며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다만 바치는 행위에 중요성을 둔 수준입니다. 즉 바치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복을 주신다는 수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산다면 ‘내게 있는 좋은 것을 바치면 복 주실 것이다’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여호와이시기에 여호와께 바칠 만한 내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인물로 에녹이 등장합니다. 본문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합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입니다. 아벨과의 차이라면 에녹은 믿음으로 인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간 사람인데, 아벨은 믿음으로 인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하겠습니까? 분명 죽은 아벨보다는 죽지 않은 에녹일 것입니다. 죽지 않고 하늘로 갔다는 것이 더 믿음이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벨과 에녹을 두고 누구의 믿음이 더 낫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벨은 죽었지만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도 않은 채 하늘로 옮기웠으니 에녹이 더 귀한 대접을 받은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습니까? 과연 에녹이 아벨보다 더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대접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에녹이 아벨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에 대해, 그리고 믿음에 대해 이런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사람을 더 복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세상에서의 환경과 소유에서 찾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보다 좋은 환경과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복받은 것으로 여기고, 그가 믿음이 좋기에 하나님이 그러한 복을 주셨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과 에녹의 차이는 믿음이 아니라 역할이었습니다. 역할을 두고 누구의 역할이 더 낫다는 말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연극이나 드라마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동일한 역할은 없습니다.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연기함으로써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역할이 가장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주인공만으로 드라마를 완성할 수 없음을 생각해 본다면 모든 역할은 한 드라마에 있어서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아벨은 죽음으로써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고,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간 것으로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에녹이 더 낫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위를 보면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힘들게 고생을 하는 분이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일찍 죽은 분도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은 불행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다만 그런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각기 역할을 맡아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의 역할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못사는데 저 사람은 잘사는 것으로 불평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합니다. 에녹이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하는데,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곧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면 에녹을 통해 보여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6절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내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세상 만물의 주관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을 아는 자가 신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그대로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신자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모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말씀의 세계가 곧 현실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서 1:14-15절을 보면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에녹은 뭇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이 있을 것임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판을 믿는다면 경건치 않은 세상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게 됩니다. 심판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사라질 것에 불과한 세상을 소망하고 세상을 힘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심을 믿고 심판이 성취될 것을 믿는 자의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상은 하늘의 상입니다. 에녹이 받은 상은 무엇일까요? 돈이었습니까? 성공이었습니까? 천국에서 크고 좋은 집을 받는 것이었습니까? 에녹이 받은 상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생명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하늘의 생명이라는 귀한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것이고, 이 믿음이라면 세상의 좋은 것을 상으로 여기거나, 또는 세상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으로 살면 나중에 천국 가서 크고 좋은 집에 살게 된다는 엉터리 같은 말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은 하늘의 생명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미 그 귀함이 충족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외면하고 어떤 행위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벨의 믿음, 에녹의 믿음을 보면서 나의 믿음은 과연 어떤가를 살펴야 합니다.

믿음은 나 자신을 보지 않게 합니다. 어떤 형편에 살든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역할로 믿으며 오직 믿음으로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과연 이런 믿음에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시고 믿음의 참된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