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강)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분문>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브리서 11:7)

<설교>

믿음은 보이는 것을 손에 쥐어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와 실상으로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믿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자가 세상의 것을 복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와 실상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에 천국을 보지 못하고 천국을 보지 못하기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가치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믿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면 그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망하면서 그 세계는 가치있다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는 신자가 보이는 세상의 것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면서 복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얻고자 믿음을 동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이야 말로 ‘믿음이 없다’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일을 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을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 그들을 말함으로써 믿음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해 우리 자신이 과연 믿음에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아시는 대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그 심판에서 살아난 사람입니다. 이 노아에 대해 히브리서는 증거하기를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직 보지 모하는 일’이란 장차 있을 홍수 심판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장차 있을 심판에 대해 경고하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경고를 받은 자로서 방주를 예비한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를 믿는다는 말은 하면서도 방주를 예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경고는 현실이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노아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임할 증거가 보이지 않기에 심판에 대해 의심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실과 증거를 떠나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자체가 노아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홍수로 망한다고 했을 때, 세상은 상식과 과학을 동원하여 그 말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론은 허황된 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홍수로 망한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는 더욱 과학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그 어떤 징후도 찾아볼 수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고 다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쯤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자조차도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보이지 않는 일이고, 나중에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기기에 하나님의 경고를 현실로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현실의 전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 삶은 경고를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재에 치우쳐 살아가게 될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세상은 방주를 예비하는 노아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에 믿음으로 사는 노아의 삶이 세상에 이해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오히려 노아를 싫어했지 않겠습니까? 평안한 세상에서 한평생 평안하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지 뭐하러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평안한 세상을 시끄럽게 하려고 하느냐는 시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심판을 경고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노아가 받았던 경고를 오늘 우리가 받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는 노아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아직 보지 못한 일입니다. 언제 심판이 임할지 알 수 없고 심판이 임한다는 징조로 여길만한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재해가 있고, 이상기후가 있고, 지진도 있고, 전쟁이 있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으로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심판 자체를 무시하고 삽니다.

하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심판을 보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아무리 과학으로 무장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모두가 모래 위에 쌓은 것에 불과할 뿐임을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과학이 세상이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말씀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믿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한 일에 대한 경고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고를 현실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노아처럼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지금의 신자가 방주를 예비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방주를 예비하는 삶이라고 해서, 특별히 해야 하는 삶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신자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심판에서 건지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노아와 같은 심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것은 자연히 세상을 향한 정죄가 되었습니다. 7절에서도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라는 말을 합니다. 방주를 예비하는 노아의 삶이 세상을 정죄하는 외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세상을 향해 ‘너희는 심판을 받고 망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방주를 예비하는 노아의 행위가 세상을 향한 정죄의 외침이 된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믿지 않으니 결국 심판에서 건짐 받지 못할 것이다’는 외침이 노아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보면서 하나님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오직 노아와 같은 믿음이 있는 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자도 세상을 향한 소리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묵묵히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사는 것,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향한 저죄의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 있는 백성을 찾는 소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는 세상은 방주를 예비하는 노아의 삶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닷가에서 방주를 짓지 않고 육지에서 짓는 것을 볼 때 어떻게 평하겠습니까? 정말 미련한 짓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노아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은 예수 믿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세상의 심판의 없다면 모두 헛된 일로 끝납니다. 괜한 수고를 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십자가, 부활, 승천 이 모두가 세상의 멸망이 없다면 쓸데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심판을 보지 않기에 예수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방주 없이도 세상을 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경고가 눈에 보이는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참으로 지혜있는 자가 누구인가가 증거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믿고 그 일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가 진심으로 지혜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날 것입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고를 따라 세상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따라 세상을 보게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그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들의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경고가 현실입니다. 보이는 것은 헛된 것이고 사라질 허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보이는 것을 참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께 보이는 것을 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헛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 영원한 것을 구하는 것이 믿음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