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히브리서 2:1-4 큰 구원

<본문>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브리서 2:1-4)

<설교>

1:14절의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는 말씀은 신자의 존귀함에 대해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신자가 이토록 존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사보다 뛰어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후사로 부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것은 신자의 존귀함이란 신자를 높여주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이토록 존귀한 신자가 과연 존귀한 신자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신자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없고 천국보다는 세상에 대한 소망과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자에게 주어진 존귀함을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앞서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1장에서 말한 내용의 결론이 2:1절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후사로 부름 받은 존귀한 신자가 믿음에 머물지 않고 흘러 떠내려가는 것에 대해 권면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흘러 떠내려 간다’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멸망 받는 것으로 이해를 하지만 저는 멸망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말씀을 멸망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뭔가 잘못했을 때 그것으로 멸망을 받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조바심에서 헤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은 파선해서 침몰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여전히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이지만 다만 이리 저리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흘러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뭔가 굳게 붙들려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 얻은 후사이면서도 말씀으로 굳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습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분명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도 인정하고 내 의가 전혀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반발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도 그 삶을 보면 여전히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같이 떠내려 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형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냥 거짓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뿐입니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흔들림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이 없이 강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라면 말 그대로 신자는 로봇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에 있기에 신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알았다면 예수님을 안 것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 예수님에 대한 간절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흘러 떠내려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굳게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나를 붙들어 달라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를 원하는 그 마음은 인정합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마음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한 그 다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기도한 것으로 끝나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붙들어 달라고 기도했으니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붙들어 주는 것은 주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만약 흘러 떠내려 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기도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습니까? 간절함이 있다면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을 쓰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라고 말합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은 구약 시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견고하게 적용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치 아니했을 때 그에 따른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는 말씀을 볼 때, 구약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심판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큰 구원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말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을 등한시 여긴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구원에 대한 소홀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이미 심판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신자들이 복되다는 것은 구약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았을 뿐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오실 메시야였던 것이지 오신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비해 지금의 신자는 세상에 오신 구원자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얻게 된 구원의 복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지금의 신자들에게 구원은 구약에 비해 큰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말하기 위해 본문과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게으르고 연약하면서 세상을 향해 흘러 떠내려가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고 복된 구원을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은혜를 말한다고 해서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절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원함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향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대해 여러 표적과 기사로써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크고 확실한 구원의 증거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구원은 그리스도안에서 확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증으로 인해서 우리의 연약함과 게으름과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구원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깨달아라는 것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소홀히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기 보다는 세상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흘러 떠내려가는 것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답지 못한 것입니다.

빌 2: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의 복이 얼마나 크고 귀한가를 안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셨고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생각한다면 흘러 떠내려가는 상태에 머물수 없습니다. 큰 구원을 알았다면 절대로 신앙생활을 대강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바 구원이 얼마나 큰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위에 굳게 서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