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강) 히브리서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본문>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 11:24-26)

<설교>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심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자신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 갈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행복은 세상이 꿈꾸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즉 풍족하고 염려와 걱정이 없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는 삶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힘과 현재의 조건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막연하나마 신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믿음을 자신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환상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참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만난 대가로 주어지는 선물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세상의 행복.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소위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성경에 하나님을 만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분들이 과연 하나님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던가를 생각해 본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얻게 될 선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 24-25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 역시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내용과 비교해 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을 보면 장성한 모세가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함으로 바로를 피하여 도망을 치게 된 것이지 본문의 내용처럼 모세가 스스로 바로의 공주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실과 다른 히브리서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해 드렸습니다. 이 내용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함으로써 이해가 되는 것이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만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처음부터 본문의 내용대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영화를 누리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더 좋아했다면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되겠습니까? 결국 모세의 행동이 부각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의 행동을 보여준 모세는 있을지언정 하나님에 의해 고침 받고 다스려지면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모세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전지전능하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증거합니다. 그것이 죄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어떻게 고침 받으며 어떤 인간으로 바뀌게 되는가? 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인간은 없습니다. 모세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믿음의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은 그들을 고치시고 바꾸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결국 믿음의 사람을 인해 증거되는 것은 믿음으로 산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인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치게 된 것도 모세가 재수가 없어서 들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되어진 일입니다. 모세를 하나님의 일을 맡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 하신 일입니다. 물론 모세가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은 세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손해입니다. 애굽의 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을 하나님이 박탈해 버리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세를 향한 이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없었다면 모세는 애굽에서 편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때문에 인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본문은 이런 의미에서 모세의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당장 애굽에서 도망칠 때는 자신이 애굽에서 도망을 쳐야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때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모세를 이렇게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다고 해서 세상의 좋은 것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환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인생이 세상의 영화가 아닌 고난으로 이어졌음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만난 신자의 삶은 세상의 영화와는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무작정에 믿음에서 행복을 꿈꾼다면 그것이야 말로 환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을 거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삶을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택하는 길은 분명 고난이 아니라 세상적 영화입니다. 이것과 반대된 길이 믿음의 길이기에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붙들어 이끌어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고난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와 결단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이 이끈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열심이고 의지며 하나님의 승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두고 ‘우리도 모세처럼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택하고 살아갑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믿음이 우리를 고난의 길로 이끌어 갈 때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을 할 뿐입니다. 내가 나를 볼 때 나라는 존재는 고난의 길에 순종할 만한 사람이 못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이 세상에서 만날 것은 분명 손해며 고난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긋남을 거부하고 진리의 정신으로 살려고 할 때 세상은 여러분께 절대 박수를 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과 타협하지 않음으로 인해 온갖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다”고 말합니다. 보화보다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기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믿음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볼 때는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자신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교회 출입하고 예배드리고 헌금 조금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상이야 말로 세상의 전부를 준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이 상으로 인해 능욕을 더 큰 보화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원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서 자신을 좋게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귀를 여시고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끌어당기시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아닌 하늘을 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을 그리워 한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지금의 현실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오면 애굽보다 더 좋은 것이 기다릴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기 위해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게 하기 위해 나오게 하신 것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환상은 실망과 원망만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서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도 받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우리의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는 순종할 수 없는 믿음의 삶에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