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브리서 11:29)
<설교>
히브리서가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 믿음으로 가지라’거나 ‘믿음을 본받으라’는 권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줌으로써 믿음의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믿음을 우리 멋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착각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여기고 붙들면서 자신이 믿음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부터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생명이 되는 믿음에 이끌려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본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배경으로 한 내용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생각으로 이해하자면, 아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믿음을 보시고 홍해를 열어서 건너게 하셨다. 믿음은 이런 기적을 일으킨다. 우리도 이런 놀라운 믿음으로 살아감으로서 기적을 일으키는 삶이 되자’는 식의 해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의 믿음을 촉구하고 부추기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과연 이스라엘에 홍해를 앞에 두고 두려움이 없이 믿음으로 건너기에 홍해가 열렸느냐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은 홍해가 가로 막혀 있고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상황에서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이렇게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애굽사람의 종으로 사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원망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스라엘이 믿음이 있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본다면 이스라엘은 오히려 홍해를 건널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차라리 멸망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이런 그들이 홍해를 건너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한 능력이 무엇일까요?
애굽에 있었던 장자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난 것은 어린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인간 자체가 애굽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이유인 죄를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 역시 죽어야 하고 망해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린양의 피를 발랐다는 것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이처럼 피로써 살아난 이스라엘은 과거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어린양의 피와 관련되지 않았고, 어린양의 피로 살아난 경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올 때는 어린양의 피로 살아난 존재로 나오는 것입니다.
즉 홍해 앞에 있는 이스라엘은 그냥 이스라엘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써 살아난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죽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죽어야 할 자가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피로 살아난 이스라엘이 죽는 것은 큰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가 곧 생명이라는 사실이 무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널 만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어린양의 피로써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신분이 홍해를 건너게 한 것입니다.
반면에 애굽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을 보면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애굽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달라집니다. 과연 무슨 다른 점이 있기에 한쪽은 생명이고 다른 한쪽은 사망입니까? 믿음이 없기는 이스라엘이나 애굽이나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별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한 것이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홍해를 건너게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는 하나님 편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택도 아니고 그들의 원함도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 안에서 ‘신자’로 일컬음 받게 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수준을 보자면 우리 역시 홍해 앞의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믿는척하지만 문제만 생기면 죽는다고 소리치며 원망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경은 신자를 ‘천국에 들어갈 사람’으로 말합니다.
무엇이 근거가 되어 믿음이 없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가 근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믿음으로 인해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믿음으로 천국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잘 살아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우리를 백성의 자리에 붙들어 놓고 계신 결과로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굽 사람이 시험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보면서 애굽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어떤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홍해로 들어가게 하였겠습니까? 애굽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건너는데 우리도 건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즉 애굽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참된 이유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있는 것만 보일 뿐, 그들을 건너게 하시는 분은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건너면 우리도 건널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의 이러한 생각은 이스라엘이나 자기들이나 전혀 다르지 않는 같은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섬기는 신이 다를 뿐 우상을 섬기는 자신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이 세상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자를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가진 자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이라는 것도 누구든 착하게만 살면 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이 홍해를 건너면서 오직 하나님이 택한 자만 건널 수 있음을 보지 못한 것처럼, 세상은 택한 백성에게만 허용된 구원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구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잘만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천국이 그들의 상식에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성’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붙들고 있고 생명에 있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는 전혀 무의미하고 무능력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 욕망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복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우리가 잘해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가 나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백성이라는 관계 안에서 신자는 결국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백성의 관계 안에 붙들어 놓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이것이 곧 복음인 것입니다.
시 100:3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말씀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맺으신 백성이라는 이 관계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관계에 붙들어 놓기 위해 간섭하시고 책망하시면서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