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5-9)
<설교>
믿음이 세상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힘이 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은 믿음을 대단하게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돈이 있는 자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지만 믿음이 있는 신자 앞에서는 오히려 조롱 할 뿐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신앙을 맥 빠지게 하고 힘없게 하는 지도 모릅니다.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십자가를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뭐 있나?’라는 불신을 가득 안고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그 속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천사도 신자의 섬김을 위해 보냄 받은 존재로 말할 정도로 신자의 존귀함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신자라는 이 신분이 존귀하다는 것에 대해 그 어떤 느낌도 갖고 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존귀함에 대해 감사함은커녕 존귀하든 존귀하지 않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하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앞서 말한대로 아무리 성경이 신자를 존귀한 존재로 말한다 할지라도 세상에 나가서는 전혀 달라질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여 더욱 간절히 삼가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셨으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으로 존재하게 되는가에 대해 말함으로써 신자의 마음을 예수님께 붙들어 놓기 위해 힘을 쓰는 것입니다. 당시 신자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데 현실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그들의 신앙이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여 권면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은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세상에서 어떻게 사셨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신분이라면 세상에서 모든 영광과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면 뭐합니까? 세상은 전혀 알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악한 죄인으로 여기며 죽여 버린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현실이 이러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말해봐야 예수로 인해 대접받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예수님으로 인해 대접받는 존재가 되어지기를 기대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일 뿐입니다. 예수님조차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발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대접받는 존재가 되어지기를 열망합니다. 즉 예수님이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공한 자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 위에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러한 대접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9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모든 것이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이처럼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어야 하셨던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애당초 죽음은 예수님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죄를 범한 인간의 몫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몫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죽음에서 인간의 죄를 보기보다는 죽음을 곧 불행으로만 연결하여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죽음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죽음을 맛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단지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는 죄를 아는 것에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애당초 나의 몫이었음을 깨달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이 큰 은혜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그 뜻에 순종하시는 분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 대접받고 높임 받는 인간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지고 섬김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이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힘이 되지를 못한다는 것 때문에 신앙에 대해 시큰둥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신자의 사명임을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는 것은 ‘소유의식’ 때문입니다. 갖고자 하는 욕망은 팔팔하게 힘이 넘치는데 가져지는 것이 없으니 불만족에서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신앙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인해 무엇을 갖고자 하십니다.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인해서 여러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시며 삽니까? 풍족한 삶입니까? 성공입니까? 세상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는 존재로 뒤바뀌는 것입니까? 이런 바램이 있다면 백이면 백 믿음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실망만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그 어떤 매력도 갖지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잠시 잠간 동안 존재하다 사라질 것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것은 육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즐거움조차 말 그대로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반대로 고난과 어려움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인해서 대접받는 것이 없고 오히려 조롱받음만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잠시 동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바로 이 영원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죽음을 맛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맛보셨으나 잠깐 동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자리에서 고난을 맛보고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대접받으면 산다 할지라도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잠시 세상에 버려둔 것처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죽음을 맛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안다면 어떠한 어려움에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닻이 되어서 여러분을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굳게 붙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의 현실에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이 잔재한다면 잠시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무엇 때문에 죽음을 맛봐야 하셨는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맛보심이 우리에게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보다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고생도 잠깐이고 행복도 잠깐일 뿐입니다. 잠깐으로 끝날 인생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세월을 허비하기 보다는 영원히 주어질 복된 것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사는 것이 더 큰 유익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의 앞에서 깊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크고 복된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에게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에서 흔들리고 낙심하고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시는 분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심을 가슴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