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강) 히브리서 13:7-8 동일하신 그리스도

<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7-8)

<설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보일 뿐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져가기에 ‘변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합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이 변한다고 여겨지는 것 역시 겉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세상이나 사람은 불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말씀의 효력과 위력이 그대로 담긴 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악함에 있습니다. 즉 에덴동산에서 벌어졌던 범죄의 모습들이 그대로 지금의 시대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껏 중지됨이 없이 에덴동산의 죄 아래서 세상은 흘러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변하지 않고 세상이 변하지 않으며 죄가 변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을 합니다.

어제의 예수님이나 오늘의 예수님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2천 년 전에 오신 그리스도나 지금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나 동일하신 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베들레헴의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바로 그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세상의 죄로 인해 오신 분이라면 지금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도 우리의 죄로 인해 오신 바로 그분이어야 합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안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나 오늘 우리들이나 동일선상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어떤 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 얘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들은 역사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죄입니다.

이처럼 죄 아래서 모든 인간은 동일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동일하신 것이고, 말씀도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세상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성경에서 계시된 그분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모습이 초대교회 때 사도들의 믿음과 동일한 것입니까?

7절에서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서 그대로 행해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보였던 믿음만이 참되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충 대충 아무거나 믿음으로 갖다 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전 1:30절을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세계를 살아감을 뜻합니다. 그 세계는 그리스도가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것이 충만된 세계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인데 과연 그리스도를 부르는 우리가 그러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시고 하늘로 가셨습니다.

하늘로 가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지금은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의 완성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 분과 동일하다면 예수님을 부르면서 나의 복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이것이 사도들의 믿음이었습니까?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세상의 복을 구했고 그것으로 자랑하였다면 우리에게도 당연히 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도무지 사도들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입니까? 믿음 아닌 믿음, 즉 가짜 믿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일하신 분이라면 어제의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것처럼 지금의 예수님도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보내시고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시면서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제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은 우리의 열심으로 구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는 예수님이 일하셨지만 하늘로 가신 지금은 자기 백성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면서 일하도록 도우신다는 말을 하지만, 이것은 동일하신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하시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코 믿을 존재가 못되고, 하나님의 일을 맡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인간에게 일을 맡겼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변화를 말하지 않고 있으니 결국 다른 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의 현실도 동일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편히 살게 하기 위해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의와 거룩과 진리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며, 지금도 동일한 뜻을 가지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고달픈 삶도 신자에게는 불평할 조건이 못되는 것이고, 오히려 고달픈 것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 것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는 분으로 사셨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이 바로 그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동일하신 그리스도라면 예수님이 당하신 그 모든 일이 우리의 죄로 인한 것들인데 그런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대로 흉내 낸다고 해서 신앙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고침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똑같은 문둥병을 고침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돌아와 감사하는 한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을 하십니다.

그러면 문둥병자에게서 믿음은 무엇입니까? 병이 고침 받은 것입니까? 하지만 병은 나머지 아홉도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이 없는 자로 규정됩니다.

세상은 병 고침 받는 것을 대단한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문둥병은 당시에는 불치병입니다. 살았으나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처지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한 병이 나았다면 아마 우리는 그 사람의 믿음이 대단해서 하나님이 고쳐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 나은 것과 믿음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아홉 명의 문둥병자도 고쳐주심으로써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감사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병이 고침 받았다고 해도 결국은 죽습니다. 병 고침 받은 것이 영원한 사망에서 구출된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병 고침으로 인해서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믿음 없음이 증거 될 뿐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게 합니다. 나를 고쳐주신 주님께 감사하게 합니다. 육신의 병이 아니라 영혼의 질병을 고치심으로써 멸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예수님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배척을 받고 죽었습니다. 사도들도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오늘의 세상 역시 믿는 자를 환영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미움 받는 길을 피하려고 한다면 결국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참된 그리스도인가를 생각하십시오. 말씀을 보면서 동일하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묵상하시고 바로 그분을 바라보는 자로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