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3-31 신앙과 삶

<본문>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사도행전 28:23-31)

<설교>

사도행전의 중심 사상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이 사도들에게로 이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도들을 세워서 여전히 주님의 일을 해 가신다는 것이 사도행전에서 말씀하고 있는 중심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도들의 행적이나 업적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복은 전선에서 은퇴하여 뒤에서 격려해주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할 뿐 일은 신자가 해야 한다는 잘못된 시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베드로나 바울 등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일을 하였으나 배후에서 일을 시키시는 분이 따로 계시고 일을 이루시는 분도 따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며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뭔가 결론이 없는 것처럼 흐지부지 끝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행전은 결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일은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말했던 것은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일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곧 사도행전의 연속된 삶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사도행전은 우리가 기록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많은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저기 다니며 선교를 많이 하는 것이 내가 사도행전을 기록해가는 의미로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신자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도행전은 결국 영웅전, 또는 위인전이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사도행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신앙생활을 대단한 업적을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어떤 결과든 결과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맡겨진 역할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원했던 로마행이고, 하나님 또한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고자 하셨는데 정작 로마에 도착해서 바울이 한 것은 로마의 유대인들을 모아 놓고 복음을 가르친 것뿐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이 더러는 믿고 더러는 거부하였습니다. 고생하면서 로마에 왔는데 기대할만한 결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에 온 것이 헛된 일이거나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신자가 자신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것이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도 그렇게 보실까요? 하나님께는 좋은 결과 나쁜 결과라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무엇이 신자로 사는 것인가?’이지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31절)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 마지막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분명 대단한 말씀도 아닌 것 같고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신자로서 평생을 살아가야 할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평생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라 삶이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자의 삶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의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날 때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단지 종교 단체일 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 자체에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목적을 두게 되면 결국 교회를 위해 일하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일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점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가치와 기록 목적은 살아계신 주님이 계속 일하시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결과에 치중을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신앙의 가치 역시 드러난 결과로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외부적으로 드러난 종교적 활동만을 신앙의 삶으로 여기게 될 것이고 그것만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결국 눈에 보인 결과물이 없는 삶을 사는 신자들은 마치 신앙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믿음이 없다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시각이 여러분 스스로를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하늘의 선물이 주어진 여러분들이야 말로 특별한 존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니까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사실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과 같은 특별한 일과 업적을 원하시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들의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위대한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신 그대로 살아가면서 다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존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날마다 여러분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에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가치있는 신앙의 삶을 드러난 결과로 판단하지 마시고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지금의 평범한 여러분의 삶을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지금의 삶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할 일입니다.

혹 하나님이 다른 일을 하시고자 하신다면 누군가를 세워서 일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맡겨진 대로 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느냐로 그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나 노인이나 목사가 목사 아닌 성도나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자신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말고 묻히더라도 믿음에 거하십시오. 그것이 신앙인의 위대한 삶입니다. 사도행전은 여러분의 삶에서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