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5:17-26 기적의 의미

본문의 내용은 성경에서 많이 대할 수 있는 기적 중 하나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표적과 기사가 있게 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들이 그것을 시기해서 사도들을 잡아서 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밤중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옥에 갇힌 사도들을 구해준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성경에 이러한 기적은 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군대에 쫓길 때 홍해가 갈라진 것이나,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그 생명이 연장된 것이나, 다니엘이 사자굴에 빠졌을 때 천사가 사자의 입을 막아서 다니엘을 지킨 것 등 많은 이적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적을 대할때마다 우리는 나에게도 그러한 이적이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았다거나,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걸려서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처럼,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이적처럼 옥에 갇혔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문을 열어준 것과 같은 직접적인 기적은 사실 찾아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본문과 같은 기적을 대할 때 곤란한 것은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이라면 어쨌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사실로 일어난 기적인데 왜 지금 현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느냐는 것이 본문과 같은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라는 의문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이기에 혹 신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다고 해도 '성경처럼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옥문을 열어 줄 것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지금도 그러한 기적이 있게 하실 수 있음을 믿으면서도 그러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러한 기적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왜 지금에는 그러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시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결국 본문과 같은 기적은 우리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을 이해하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옥에 갇힌 사도들을 구해주신 것을 단지 곤란에 처한 사도들을 도와주고 보호하신 것으로 이해를 한다면 '지금도 그러한 곤란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지금은 그런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시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옥에 갇힌 것과 같은 어려움은 초대교회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에 대한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에 나타난 기적이 특정한 사람이 처한 난간과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것으로 나타날 때 '나도 어려움에 처하면 하나님이 구해주시겠지'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 기적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적은 어느 한 사람이 처한 난관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기적의 목적은 결코 한 개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결국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이 왜 지금에는 일어나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게 되고 기적 자체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이 본문처럼 사도들이 처한 난관에서 역사하셔서 그들을 구해내기도 하시지만 그 기적이 계속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주의 사자를 보내서 옥에 갇힌 사도들을 구해내시지만 그 사도들이 나중에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할 때는 그냥 그대로 둬 버리십니다. 옥에 갇힌 그들을 구하셨다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할 때도 천사를 보내서 구하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옥에서도 건지시는데, 왜 어떤 경우에는 그냥 두고 죽게 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구절은 19-20절의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들을 옥에서 구해내시는 것은 다만 사도 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도가 옥에 갇힌다면 그것은 사도 개인이 어려움을 받고 곤란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전파되는 일이 방해를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이 전해지는 하나님의 일은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을 수 없고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의 사자를 보내서 사도들을 구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들이 기적으로 옥에서 나오게 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그 무엇으로도 방해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음을 증거하시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적은 그때만의 기적으로 중지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베풀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적이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베풀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의 기적의 간섭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기적을 기적으로 보지 못하고 기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때 하나님이 사도들을 세우신 것은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지 결코 사도 개인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앉은 뱅이를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는 이적이 있게 하신 것도 그 기적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지 기적을 통해서 사도 개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을 개인의 이름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때문에 '저런 기적이 나에게 있다면'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기적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기적을 성경에 등장하는 것처럼 초자연적인 특이한 사건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것을 기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이 없는 현대를 볼 때 '초대교회와 같은 기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지고 있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은 중지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속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간섭 아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여러분을 붙드시는 간섭으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곤란에 처하게도 하시고, 또 필요하다면 곤란에서 건지기도 하시면서 인생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말씀이 드러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때문에 현대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특별한 일로 주어진다기 보다는 그냥 살아가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되어지는 일 안되어지는 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기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힘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붙든 결과이지 여러분 스스로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는 것보다는 세상 것으로 사는 것을 더 즐거워합니다. 그런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방해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죽게 하시면서까지 우리의 마음을 붙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 무엇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구해내시는 것보다는 사탄의 권세에 갇힌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희생하게 하신 것이 더 큰 기적이 아닙니까? 병에 걸렸다가 나은 것보다,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다치지 않는 것보다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이야 말로 최고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기적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비한 사건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신비한 사건보다 더 신비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났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이 믿음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사탄의 권세에 붙들인 인간의 성품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붙드시고 건지신 것입니다. 사도들을 옥에서 구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사단의 권세에서 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 기적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순간도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곧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시기 위함이기보다는 우리를 세워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있게 되는 어려움도 곤란도 모두가 다 우리를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생명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은 중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의지가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이루거야 마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안에 사는 삶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