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강) 8:9-24 마술사 시몬

사람이 과연 무엇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을 믿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주의하지 않은 채 다만 교회를 다니면 다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관심의 문제까지 포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9-11절의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라는 말을 보면 시몬이 행한 마술은 지금과 같은 손놀림이나 눈속임의 차원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몬 앞에 빌립이 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며 세례를 줍니다.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 다니면서 빌립으로 인해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으로 인해서 놀라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빌립이 행한 능력이 마술사인 시몬이 행한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와서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하자 성령을 받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광경을 목격한 마술사 시몬이 사도에게 돈을 주면서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19절)라고 요청을 합니다. 시몬은 사도들이 행하는 능력을 돈을 주고서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몬에게 베드로는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20-21절)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시몬이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그를 전심으로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시몬은 마술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빌립이나 사도들이 행하는 능력과 표적들이 자신의 능력보다 더 커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가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닌 것도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단지 그 능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몬에게 빌립은 단지 자기보다 큰 능력을 행하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도에 대해서도 같을 것입니다. 때문에 시몬은 빌립이 전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말에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사도들로 인해서 나타나는 표적에 대해서도 다만 그 능력에 놀랄 뿐이지 사도들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빌립이나 사도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심을 보지를 못합니다. 다만 사람만 보이고 사람이 행하는 능력만 볼뿐입니다. 그래서 시몬은 사도들에게서 돈을 주고서라도 그 능력을 사고자 했던 것입니다.

신앙이란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안수를 해서 병을 고치거나 능력을 행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도들이 능력을 행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도들을 통해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이지 사도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가 어떤 표적을 행한다고 해도 그 표적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당연한데 표적을 행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결국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관심 밖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큰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신앙이 있기 때문에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기에 능력을 보이게 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능력을 돈을 주고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자신이 좀 더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자가 되고 싶어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몬의 의도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런데 헌금을 많이 해서 복을 받겠다고 한다면 결국 돈으로 복을 사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쉽게 말하고 있는 '십일조 하면 복받는다'는 얘기도 따지고 보면 시몬처럼 돈으로 복을 사겠다는 발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자는 자신을 나타내고 증거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았다고 해도 그에 다른 대가를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증거한 자신이 초라해지고 사람들이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혀 섭섭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다고 해서 신자가 아닙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가?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에 자신이 초라해지고 낮아진다고 해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가? 로 확인되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시몬은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결코 우리의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를 알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고 보여질 수밖에 없는 열매가 있습니다. 은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에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자신이 증거될 이유가 없음을 아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두고 사는 신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은혜를 말하되 은혜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 어려운 것은 신앙의 결과가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의 것으로 보상된다는 약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에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결과가 자신의 것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 신앙에 대한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도 좋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도 좋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도 다 좋지만 그렇게 살아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뭐냐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오직 하늘의 것뿐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보상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하늘의 것보다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세상의 것으로 보상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니 구원이니 영생이니 하는 것보다는 '복받았다'는 말에 더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능력을 사려고 한 것은, 사도들이 행하는 능력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자신이 소유한다면 자신의 가치도 역시 향상 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돈을 주고서라도 사도의 능력을 소유하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시몬에게 능력이 주어진다면 시몬은 능력을 행하면서 과연 누구를 내세우겠습니까? 분명 능력을 행하는 자신을 내세우며 자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은혜에도 관심이 없으며 다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이 목적일 뿐입니다.

사도는 이러한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고 해도 돈에는 관계가 없고 주어질 분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면, 도에는 관계가 없으며 분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어떤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거나 칭찬하지 않고 무관심합니다. 그럴 때 그 속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다음에도 그와 같은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고 칭찬하는 재미로 삽니다. 그것이 자기 행위에 대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일을 찾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속마음을 내어 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교회에서 봉사를 했을 때 봉사한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회개하게 되어지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봉사함으로서 감추어졌던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신앙이 마술사 시몬의 길이 되지 않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항상 자신을 살피면서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두면서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사는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