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강) 9:10-19 사울과 아나니아

오전의 말씀을 보면 '세상은 하나님 중심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일에 부름 받아 쓰여지고 있는 도구일 뿐입니다. 즉 모든 일에 있어서 주체는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또 현시대에는 구약이나 초대교회때처럼 하나님의 권능이 기적과 같은 가시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무시되는 경향이 많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홍해가 갈라진 이적에 대해서 들으면서도 속마음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는 이적에 대해서 들으면서도 그러한 이적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존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주체로 하는 불신앙의 삶의 모습이 보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것인가로 기도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오직 인간의 소망과 생각을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릴 것은 자기 생각을 존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오직 하나님의 생각만을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위해서 신자는 날마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우리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로 인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보다는 내 생각이 무시된다는 것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우리 자신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자세로 살아가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역시 이러한 태도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살피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나니아란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하늘의 빛을 보고 눈이 멀어버린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사울이 눈을 뜨고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 아나니아에 의해서 되어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사울이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에 있어서 굳이 아나니아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빛을 봤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울이 회개를 했다면 스스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빛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된 사건을 두고 '사울의 회심'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9장의 내용을 보면 사울이 회개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사울이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었고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함으로써 다시 보게 되었고 그 후에 예수를 전파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울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빛을 봄으로써 회개를 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물론 사울이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사울이 회개를 했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울을 부르시고 빛이 비췬 것은 사울이 회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을 뿐이고 회개의 주체자는 사울이라는 생각이 잘못임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 '믿음이 먼저냐 회개가 먼저냐?'라는 것을 두고 누군가와 논쟁해본 경험이 없습니까? 청년들 가운데는 이러한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논쟁에서 믿음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이는 회개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사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회개가 먼저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 어떻게 주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이 역시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모르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예수를 믿는 자라고 하기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논의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서로의 주장만 남은 채 끝날 뿐입니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세상적인 논의와 같은 결론으로 끝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상식과 생각에 매달린 결과일 뿐입니다. 사울이 회개를 했다면 그 주체자는 사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울이 회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울을 찾아오셔서 사울을 고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이고 권능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저 사람은 안된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그가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 주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안된다고 하는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아나니아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지시하십니다. 이러한 지시에 대한 아나니아의 반응은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생각은 사울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에게 해를 끼친 그러한 자가 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한 인간의 생각은 항상 인간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여 가능과 불가능의 여부를 따지게 됩니다. 가능과 불가능에 대한 결론은 결국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한 인간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모른 채 말입니다. 사울의 얘기에 아나니아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불신앙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지시에 굴복하여 사울에게 가지만 사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아마 가면서도 '안될꺼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고, 또 사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가지 않겠습니까?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여 눈을 뜨긴 했지만 그것을 아나니아의 능력을 보면 안됩니다. 아나니아는 다만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권능이 어떠한가를 증거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안된다고 하는 일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5-16절에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주님을 전할 사람이 사울뿐이었겠습니까? 예수를 핍박하는 사울말고도 진심으로 예수를 신앙하는 신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을 택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일할 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아나니아가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어진 결과로 여겼다면 사울에 대해서도 '하나님이라면 하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같은 사람은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은 사울과 다른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권능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믿게 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자기 믿음에 대해서 아나니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고치심으로써 되어진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며 여러분이 믿고자 해서 되어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볼 때 마치 하나님이 전혀 없이 인간들끼리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믿음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세상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빛이 비췬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닙니다. 그것이 힘이 되어서 사울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그 자리에는 사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다만 소리만 들렸을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사울에게만 주님의 음성으로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소리로만 들려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소리가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듣는 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인가 아닌가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울이 위대한 자로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사울만 보지말고 사울을 위대한 자로 고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권능은 사울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에게 주어졌음을 아십시오. 신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