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강) 11:19-26 그리스도인

지난 시간에 성령 받음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신비한 일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차 자신은 잊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따라 사신 분입니다. 그 분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도덕과 윤리적으로 수준있는 삶을 살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다거나 성령 세례 받았다는 것을 착한 행동으로 연관지어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물론 나쁘게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대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남을 괴롭히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혀도 된다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석가처럼 세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오직 그리스도를 다르고 그분을 높이며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이 보는 윤리와 도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이지 착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착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신자로 인정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본문을 보면 당시 스데반의 일로 인해서 환난이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 유대인에게만 전합니다. 그런데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예수를 전파하고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는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고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주를 전함으로 주님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만나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무리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게 되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오해하기 쉬운 것은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마치 안디옥 사람들이 제자들이 착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들이 진짜 그리스도인답다'라고 하면서 칭찬하고 높이는 의미로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의 사람들이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었다는 것은 그들의 착한 행실과 삶을 보고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칭찬을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신자를 욕하고 교회를 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욕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신자라고 하면서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행실이 나쁘다는 것 때문입니다. 즉 신자라면 착하고 손해볼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욕하는 것도 교회가 예배당이나 크게 짓고 싸움만 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시 이것도 교회는 건물이나 크게 하는 것보다는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싸움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상이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인 것입니다.

결국 세상이 신자나 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실에 있습니다. 착하고 싸우지 않고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세상이 신자와 교회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말하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높이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다만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종교 단체로만 인식할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 역시 세상이 요구하고 바라보는 그러한 시각에 발맞추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떠한 교회냐?'를 생각하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신자들에게도 착하게 살 것을 가르칩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이 나를 미워하듯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물론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나쁜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착한 행실을 가지고 신자라는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예수님은 착한 행실을 가지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예수님이나 석가나 다같은 성인으로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석가가 가르친 교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시각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가? 무엇을 위해서 세상에 오시고 죽으셨는가? 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니까 의례히 착하게 살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이러한 판단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관심두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고 좋은 일을 종교단체인데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그들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을 도외시한 잘못된 처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다는 말을 단지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의미로 듣지 말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오직 주의 도를 전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말밖에 나올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착하게 살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었다는 것은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뭔가 다르다'는 의미의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저들은 예수만 말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식의 말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칭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오로지 그리스도의 뜻을 좇아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만 따르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의 제자들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말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은 것입니다.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착한 행실을 만들어 내서 신자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착한 행실을 하려고 한들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즉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착한 행실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믿음에 의해 따라오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도가 무엇인가 살피며 그 도를 따라가면 착한 행실은 자동적으로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만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착한 행실을 보여서 저 사람을 감동시키고 예수 믿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만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의 의미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로 죽는다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세상이 볼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칭찬이 아닙니다. 하나의 조롱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볼 때도 예수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것이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세상들에게 신자로서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사모하면서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세상속에서 자신이 부각됨으로서 성취감을 맛보고자 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고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자신의 착한 행실을 보임으로써 예수를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훼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나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도를 증거하겠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다만 착한 행실을 보임으로서 교회를 선전하고 나를 부각시키려고 애를 쓰는 것을 많이 봅니다. 즉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교회와 신자로 전락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교회이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좋은 말 듣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리스도만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어떻게 말하든 신경쓰지 마시고 죽으나 사나 그리스도만 따라가십시오. 오늘도 나는 그리스도의 도를 따라가는 사람이었는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을 살피고 자복하면서 주님만이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하도록 힘쓰십시오. 세상속에서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이려고 하지 마시고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만 보여주십시오. 그럴 때 세상은 여러분을 예수 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