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강) 12:18-25 세상과 말씀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옥에서 구출 받은 베드로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하라고 하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내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선악에 대한 판단도 자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면 선하다고 하고 해가 되는 것이면 악하다고 소리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 말씀할 때 그러지 말라고 말리던 사람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베드로가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조용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일을 전하라고 말하고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되어진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앞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도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기적이든 뭐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말하되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베드로와 대조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헤롯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아주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1-3절에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인 것은 어떤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지위를 굳게 하고 유대인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었기에 유대인들로부터 환심을 사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극히 싫어하는 예수 믿는 무리들을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신자들로부터는 원성을 듣겠지만 헤롯에게는 유대인들로부터 환심을 사는 것이 더 큰 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헤롯이 유대를 떠나서 가이사랴에 내려가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당시 가이사랴는 두로와 시돈과 인접해있었습니다. 그런데 헤롯과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서로 사이가 안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서로 화친을 하려고 합니다. 이유는 서로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로나 시돈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역은 활발하여 돈은 많지만 식량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필요한 식량을 이웃나라인 유대로부터 수입하여 먹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헤롯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겉으로는 웃고 화친한 척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의 침소를 맡은 신하인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했던 것입니다.

헤롯은 헤롯 나름대로 두로와 시돈 사람이 싫다고 해서 내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식량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로서로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싫은 것을 좋은척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또 21-22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라는 말을 보면 유대인들 역시 헤롯에게 아부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헤롯의 권력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들에게 외칠 때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다'는 아첨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싫은 관계에 있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겉으로 웃고 친한 척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란 싫다고 해서 싫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속으로는 싫지만 겉으로는 웃어야 하고 친한척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중학생을 깔아서 죽인 미군 궤도차량의 운전자가 미군의 재판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정작 앞에 나서야 할 정치권은 조용합니다. 정치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속으로는 화가 나면서도 겉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란 나라가 정치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는 소수국으로서는 미국이란 강대국은 국가 운영에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역시 한국이란 나라가 작지만 자기들의 정치에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의 우방이라는 말을 하면서 친근하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기 필요에 의해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에 몸을 담고 살아가면서 이러한 세상의 구조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그런 세상 고리에 묶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수없이 느낄 것입니다. 싫지만 할 수 없이 따라야 하고 아첨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세상이 아닙니까?

그러면 성경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23절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자 그것으로 우쭐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첨하는 말을 듣고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쳐서 벌레가 먹어 죽게 된 것입니다. 벌레가 먹어 죽었다는 것은 실제로 벌레가 헤롯의 몸을 갉아 먹어서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발레가 자기 몸을 갉아먹도록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몸에 염증과 같은 병이 생겨서 썩어 들어가고 그 자리에 벌레가 생길 정도의 심한 병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본문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모든 권력과 부를 누렸던 헤롯이 하나님에 의해서 죽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말합니다. 헤롯은 말씀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죽고 말씀은 더욱 흥왕하여 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보여주는 세상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볼 때 '저 사람은 사는게 참 재미있겠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가령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유대인들 위에서 호령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아첨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았으면'하는 마음은 들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나보다 좋은 집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우리에게 세상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세상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땅의 영광에 마음을 뺏겨 살기 때문에 땅의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까? 그것은 말씀이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보다는 세상에 접근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으로부터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아첨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천국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신자가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세상과 똑같이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을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내 살기 위해서 남을 치는 것밖에 배울 것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밖에 배울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세상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브레이크 없는 고속열차라고 생각하십시오. 얼마후면 망할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열차 안에서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는 어리석은 곳이라고 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과 관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사실 누가 정권을 잡고 누가 대통령이 되는 문제는 신앙적인 것과는 무관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필요에 따라 충분히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따라 공급해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니까 놀고 먹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일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얻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결국 그만큼 세상일로 분주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헤롯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의 마지막이 어떻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이 흥왕하여 가더라는 말씀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요 그것만이 우리를 살리고 흥왕하게 하는 길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자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당한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