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 시키신 일

본문의 내용을 보면 마치 현대 교회가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렇게 연관시키면 그렇다고도 말할 수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은 단지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내용은 아닙니다.

2절을 보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즉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신 것은 주께서 시키시는 일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즉 믿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그들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주님께서 오늘날 많은 목사들 가운데 외국으로 나가서 선교할 자를 따로 세우시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점을 두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성령이 시키신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셨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에 의해서 보냄 받은 바울이 한 일은 오직 ‘복음 전파’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을 보면 분명 성령이 바울에게 시키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이 안디옥에 있었던 선지자와 교사들의 일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 다른 곳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는 모든 신자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는 외국으로 보냄 받은 분들만을 선교사라고 지칭하고 있고, 우리가 선교하는 것은 그분들이 쓸 돈을 후원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 불러 세워진 분들이고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위해 살아가야 할 선교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거하는 그곳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지로 이해하고, 생활하는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은 나를 보내신 분이 시키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인지 보냄 받은 바울을 통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이 바울을 세워서 시키시는 일은 분명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저기 다니며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가 세워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려고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저기 교회를 세울 목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있게 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지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적과 의도로 일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바울’에 대해서 한가지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과거는 분명히 그렇지를 못합니다. 예수 믿는 자를 죽이고 핍박한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그러한 그를 하나님이 불러 세우셔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고자 계획하신 것은 언제라고 생각됩니까? 성경대로 하면 바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계획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일찌감치 부르셔서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지 않고 무엇 때문에 스데반을 죽이고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도록 까지 그냥 놔두신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런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울을 보면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바울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면 그것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곧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가르치고 보여주는 증거물이 아니겠습니까?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자비다’는 것을 예수님을 핍박하던 죄인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 삶과 함께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세우신 것은 바울이 쓸만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바울이 많은 일을 한 것 때문에 바울에게는 뭔가 숨겨진 자질이나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바울이 듣는다면 과연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 나의 능력으로 이만큼 해냈다’고 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돌렸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했을 뿐이지 자기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쓸만한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해서 우리의 본성이 달라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욕심으로 살아가고, 내 중심으로 살아가고, 남에게 상처 주며 살아가는 우리의 악한 모습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옛 본성들은 예수를 믿기 전이나 후에도 변함없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악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내 중심으로 이웃에게 상처 주며 살아가는 이 모습들이 곧 주님을 핍박하는 것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분명 바울이 자신의 겸손을 가장하기 위해 한말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악함이 어떠한가를 깊이 자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이 말을 하는 것은 나같은 죄인 중의 괴수라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내세워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은 바울이 예수를 핍박하는 악한 죄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다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바울을 내세워서 예수님의 용서하신 은혜를 증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불러 시키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시키신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으로 예수님의 용서하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을 증거하시겠습니까? 단지 여러분이 지식적으로 알게 된 내용을 전하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으로는 안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로 용서 받은 죄인임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나같은 죄인도 없다’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성찰이 없이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것입니다. 제가 두려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저로서 저의 외침이 한낱 공허한 말로 끝나버릴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봉사하는 행위 자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경보는 행위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봉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내 육신의 편함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하면 한 것만큼 여러분의 수중의 돈은 줄어듭니다. 헌금을 한 액수만큼 백배, 천배, 만배로 갚아주시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헌금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자는 세상을 목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자이며 돈을 의지하지 않는 자이기에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면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서 바나바와 함께 사울을 불러 시키신 일을 하게 하시는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에 의해 불러냄을 받았고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며 살아갈 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할 일은 용서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 받은 자답게 형제를 용납하고 받아주고 섬기는 것으로 증거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시키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