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18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세상 것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귀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은 하기에 하늘의 것이 귀하다는 말은 하며 살아가지만 나의 입술과 마음에는 각기 다른 것이 머물고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입술은 하늘을 말하지만 마음은 하늘을 향하기보다는 여전히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깊이 자각하며 내 스스로에게 외쳐야 할 말이 무엇인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디를 가든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서 핍박과 배척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디를 가든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살아있는 이유가 오직 복음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핍박과 반대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담대함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바울과 바나바가 핍박과 반대로 인해서 루스드라라는 곳에 왔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보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앉은뱅이가 바울이 말하는 복음을 듣고 있을 때 바울은 그에게서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앉은뱅이에게서 하나님을 믿을 믿음을 봤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뛰어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친 것을 목격한 무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겼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자기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를 가리켜 쓰스라 하고 바울은 허메라고 하면서 신에게 하는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에게도 제사하려고 합니다. 이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겨우 말렸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긴 것은 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즉 그들은 신은 위대한 일을 행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일이란 바울이 행한 것처럼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것과 같은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했다면 분명 사람이 아니라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온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상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위대함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세상이 신의 위대함을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로 여기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함을 이러한 수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놀랄만한 일을 행하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나를 위대한 자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위대한 능력이 있는 쪽에 고개를 돌립니다. 그쪽이 진짜 같고 그쪽에 신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적이 있으니 분명 신이 함께 하고 있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것과 똑같은 수준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우리를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생명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어떤 기적과 힘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셔서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써 현실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가장 위대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교회는 이러한 얘기에 코웃음을 칩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의 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인 영원한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에 대한 형통과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요구하지도 않고 현재의 삶에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신앙의 실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다만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혹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기적을 행했으니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다’는 오해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천지를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시켜서 된 일이지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다면 기적을 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적을 행한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배후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 바울의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이득이 되는 것을 복으로 여기며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라는 요구사항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복음은 복음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 보이는 것은 종교생활에 즐거움을 주는 것, 삶에 득이 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사랑을 위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형통하게 해주는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16-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 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기적을 보고 쫓아오는 무리들을 향해서 비를 내리시고 열매를 결실하게 하심으로써 음식을 먹게 하시고 기쁨으로 마음을 만족케 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음식을 먹으면서 기뻐할 것이고 마음에 만족을 누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하나님에 의해서 누리게 된 것임을 아십니까? 열매가 결실하기 위해서는 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를 마음대로 내리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으로도 안되고, 돈으로도 안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시면 세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인 것입니다.

이처럼 비가 내리고 열매가 결실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두고 비교할 때 어느 일을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마 어쩌면 앉은뱅이를 걷게 한 일이 더 위대하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이 권력으로도 돈으로 안되는 위대한 일이라면,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역시 세상 무엇으로도 안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느 한 일을 두고 ‘이것이 더 위대한 일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앉은뱅이를 걷게 한 것이나 비가내리는 것이나 동일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 내리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은 대단하고 위대한 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잘못된 시각이 다른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고침 받은 것과 같은 신기한 사건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득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족케 하셨습니다. 다만 배부르고 기뻐하였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알고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보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가장 크고 위대한 기적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