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2-29 짐을 지우지 말라

지난 시간에 율법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가지 규례를 정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들이 제정한 세가지 규례는 마치 율법에 대해 반대하는 이방인에게 절충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가지 규례를 정하는 것은 절충도 타협도 아닙니다. 다만 형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제시한 세가지 규례 역시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가지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28-29절을 보면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와 장로와 교회가 결정한 것은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낸 것이고 그편으로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사도와 장로, 교회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들 멋대로 이방인 신자에게 가서 말로 그들을 괴롭게 하고 혹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와 실라를 보내서 이 일에 대해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와 실라가 전한 말은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요긴한 것이란 구원의 도리가 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복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세가지는 결코 짐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사도와 장로, 교회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멋대로 형제에게 짐을 지우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다른 형제에게 실천하고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가 우리에게 시킨 것도 아닙니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것을 단지 내 생각에 틀린 것이라고 해서 형제에게 찾아가서 ‘그렇게 하면 안되고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 것은 하면 안된다’는 등의 말로서 형제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짐을 지우고 혹하게 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형제에게 무슨 말을 할 때에 반드시 이 말이 형제를 돕는 요긴한 말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 내 기준과 생각으로 형제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와 장로, 교회가 내린 결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은 전혀 개입될 수 없음을 결론으로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해 율법을 요구하는 것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제 멋대로 하는 것이고, 자신의 기준과 생각으로 형제를 괴롭게 하고 짐을 지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가지 규례를 말하며 삼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구원을 얻지만 그래도 신자라면 이 세가지 정도는 행하면 안된다는 의도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삼가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형제가 꺼려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삼가함으로써 교회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위를 구원 또는 복과 연결 지어서 통제하려고 합니다. 즉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거나 이것을 안해야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게 되고 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은 형제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것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께 시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인가는 사도들을 세워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하는 것처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시킨 대로 사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전하고 나누기 위해서 형제에게 나아가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키지도 않은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고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이 교회를 나왔을 때, 사람들은 당장 교회 다니면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는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짐이 될 수가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 신자에게 술 담배를 끊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시킨 일이 아닙니다. 술 담배를 끊어야 하는 것이 구원에 있어서 요긴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당사자가 스스로 깨달아서 삼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평안을 지키는 길입니다. 무조건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요긴한 것을 가지고 형제에게 나아가는가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그 믿음을 의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오히려 제사를 지내면서도 마음이 무거울 형제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사를 마음대로 지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당사자가 스스로 삼가야 할 문제이지 짐을 지워줄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짐을 지워주신 것이 있습니까? 십일조를 해야 한다, 기도를 해야 한다, 술 담배를 하면 안된다는 등등의 짐을 지워주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짐을 지워주지 않으시는데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형제를 판단하고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나오는 형제들에게 여러분이 서로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분의 희생과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요긴한 일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생각하는 율법적인 문제나 믿음과 상관없는 문제들로 인해서 무너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형제를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 삼가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복과 구원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피흘리시고 하나되게 하신 교회의 평안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과 상관없는 것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 삼가야 할 것은 삼가고 멀리할 것은 멀리하고 지킬 것은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내 기분과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모습과 태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삼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자의 입술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삶은 상관없이 말만 옳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옳고 진리라면 나 스스로부터 나의 말에 순종하고 따르기를 힘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키지 않은 것으로 형제에게 짐을 지우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일이 아닙니다. 오직 요긴한 것만을 들고 형제를 만나십시오. 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그것을 타박하거나 고치라고 할 권한이 여러분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은석교회는 예배시간에 늦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나무라거나 타박하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늦었다고 해서 천국에 못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배시간에 늦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늦음으로 해서 다른 형제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면에서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삼가고 힘써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평안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한 대로 사도 바울에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고 해서 못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먹지 않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말합니다. 이유는 자신이 우상 제물을 먹음으로 실족할 형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 교회의 온전한 모습이기 때문에 삼가고 먹지 않는 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23-24절을 보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형제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고, 형제를 위해 삼갈 것을 삼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