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0 성령의 사람

‘성령이 인도하신다’는 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혹 성령이 인도하시니까 모든 일이 뜻한바 대로 잘되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느낌은 없습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 속셈은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에 복종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뜻하는 일이 잘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이 인도한다는 것에 대해 엉뚱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니까 일이 잘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인도하심으로써 모든 일이 잘 되어집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잘 되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부흥하고 성공하고 발전하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라고 말합니다. 아시아라고 하면 한국, 중국, 일본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말한 아시아는 한국이나 일본 등의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터키 지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터키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생각하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비두니아로 가기를 애썼지만 이 역시 예수의 영이 허락지를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청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마게도냐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을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아시아보다 유럽에 먼저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이 바울을 인도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바울을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때 선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느 곳을 전도하자든가 어디를 선교하자는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한 계획이니까 무조건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어땠습니까?

바울이 아시아로 가고자 한 것은 분명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지 여행도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한 뜻을 왜 막으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생각할 때는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란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북종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마음에 들 만한 계획과 뜻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일하고 힘쓰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과 우리의 다른 또 하나의 모습은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라는 말을 할 때 ‘성공’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셨으니까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바울의 경우를 보면 전혀 뜻밖의 결과가 일어납니다.

11절부터 보면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서 있게 된 결과를 볼 수가 있는데, 14절에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마게도냐에 루디아 한 사람을 준비해 놓으시고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보면 귀신을 쫓아낸 일로 인해서 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 옥을 지킨 간수를 믿게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성령으로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서 바울을 있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위해 인도하셨다면 좀더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길로 인도하셔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환상을 보이면서까지 마게도냐로 부르셨다면 마게도냐에 하나님을 믿을 사람을 적어도 수백 수천은 준비해 놓으시고 바울을 부르셔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겨우 루디아란 여자 한 사람, 옥을 지키는 간수 한 사람을 위해서 바울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당시 여자는 천한 존재입니다. 간수 역시 아주 낮은 지위의 사람입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 아시아로 가고자 하는 바울을 막으시고 그 길을 마게도냐로 돌리셨던 것입니다. 아시아로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신 것은 아시아로 가고자 하는 바울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신비한 힘이 있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령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특히 외국으로 선교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선교를 자신의 사명으로 여깁니다. 즉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의 지역도 자신이 선정합니다. 물론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곳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 응답이라는 것이 사실 미심쩍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외국의 어느 특정 지역을 정하고 그곳에 가는 것이 하나님이 맡긴 사명이라고 믿게 되면 꼭 그 지역으로 가는 것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혹 길이 막힌다면 조용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그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마치 그 곳에만 구원받을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자세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어떤 특정 지역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든 외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든 모든 것은 우리의 뜻과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에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길은 계획한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획한 길은 막히고 전혀 다른 길이 열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이 되기 위해 주의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보람이 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성령의 인도를 방해하는 것도 없습니다. 많은 일을 해서 보람을 얻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소위 작은 일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수백 수천을 모아 놓고 설교하고 전도를 하는 것에 비해서 루디아 한 사람을 전도하고 간수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령의 사람으로서 합당한 자세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가시면서 길이 막힌 적이 있었습니까? 계획한대로 안되는 일들이 있었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은 항상 다른 길을 준비해 놓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길에 불만을 가지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만 되었으면 성공했을 텐데 지금 이 꼴이 뭔가?’라는 생각에 자신에 계획했던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부요해지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악에서 구출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누군가를 악에서 구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여러분을 재물에 부요하게 하실 수도 있고, 또는 가난하게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길입니다. 이 길에 불만을 가진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사실 고달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평안함을 염두에 두고 일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을 믿는 것에도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어봐야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멀리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도하셨다면, 오늘 우리 역시도 하나님이 정하신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신자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신자를 성령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