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15 루디아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세상에 어떤 큰 영향을 주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소위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두레마을이나 다일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뭔가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그저 집안일 하면서 직장 다니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허황되고 별 상관이 없는 말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사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겠습니까?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그것을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때문에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것들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되어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 형편 모든 것들이 우연히 되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노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사실부터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라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무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에 참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일의 비중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하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무슨 공동체라고 하면서 세상이 칭찬하는 많은 일을 하고 소위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더 가치있는 삶을 산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도구라면 어떻게 쓰여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지 인간에게 달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와 촌구석에서 농사나 짓고 있지만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을 그 가치적인 면을 따져 본다면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 볼 때는 촌구석의 할머니가 평화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주 평범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삶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를 원해서입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의 길을 막으시면서 환상을 통해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어디로 가고 안가는 모든 것도 하나님께 달린 문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직장이 어느 곳으로 발령이 나든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간섭이고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상을 보이면서까지 바울을 마게도냐 빌립보로 인도하셨는데 거기서 되어진 일이 우리가 볼 때는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겨우 루디아란 여자 한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강가에 앉아 있던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열지 않으신 것입니까?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믿게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항상 이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시각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믿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분명 하나님은 루디아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열었어야 하고, 빌립보 모든 성의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아가서는 모든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서 다 믿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에게는 많은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 몇 사람인가는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또 내가 몇 사람에게 전도를 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사용될 도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열어서 복음을 알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다른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이 전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의 귀를 열어서 듣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복음을 따라 살아가노라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루디아는 빌립보 교회의 출발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또 다시 우리는 바울이 위대한 일을 했다며 바울에게 박수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회의 출발은 바울의 뜻도 생각도 의지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루디아를 선택해서 복음을 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던 중 강가에 나가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 있던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오게 된 것도, 강가에서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이유도 우리의 의지나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모든 기회를 만드시고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기회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자답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큰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곳에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설사 평생토록 단 한 사람도 교회에 데려오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이루실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으로 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뭔가?’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우리는 항상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결과를 기대합니다. 내 행동과 노력과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었음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에 대해 포기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내가 착한 행동을 보여주고,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변화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해놓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중지하시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만 생각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이 확신이 없다면 평범하다고 여기는 삶에 담겨 있는 중요한 사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많은 일, 대단한 일만을 높이 보고 하루하루 아이들과 부대끼고 직장에서 일하고 돈벌며 살아가는 삶은 높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신자의 삶은 동일합니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세상에서 평가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삶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보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신앙으로 산다고 하면서 내세울만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며 살았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실망만 할 뿐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시면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많이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거나, 많은 일을 해야 신앙이 있다는 등의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낫습니다.

신자인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과 형편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신앙하는 것을 여러분의 일로 여기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