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3  하나님의 행하심



<본문>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암 4:6-13)


 


 


<설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하나님만의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에 의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면 인간이 아무리 구원을 원하고 구원을 위해 힘쓴다고 해도 구원과는 상관없게 됩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의 원칙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 단지 인간이 세우고 알고 있는 원칙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신앙을 열심과 연결하여 강조하고 열심만 있으면 구원이든 복이든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인간이 세운 구원의 원칙, 복의 원칙은 열심 있는 신앙생활이며 헌신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선지자로 세워서 제사와 제물 바치는 일에 열심이었던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무엇에 대해서 왜 책망을 받고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 버립니다. 열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열심을 보인 이스라엘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열심도 하나님의 책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둔다면 열심만을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열심이 그들에게 복으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 증거되었다면 얼마든지 열심을 강조하겠지만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고 삼키는 결과만 초래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한 대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벧엘에 가서 범죄하고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한다고 책망합니다. 이스라엘이 벧엘과 길갈에서 한 것은 제사 드리는 것이고 제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희생을 드리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바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들의 열심을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고 죄를 더하는 것으로 책망합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신앙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일하시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돌이키시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기근, 가뭄, 농작물의 실패, 염병과 전쟁, 성읍의 붕괴 등입니다. 이것이 과거 이스라엘을 돌이키시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읍에 식량이 떨어지게 하셨는데 그 목적은 굶어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인간의 완고함입니다.



12,13절의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은 돌이키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무시한 채 돌아오지 않는 인간의 완고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선고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책망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만약 여러분이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바치며, 주일에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모스의 책망을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근거로 해서 죄를 생각하고 신앙 없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면 죄의 문제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길 것이고 자신은 이미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결국 아모스의 책망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소위 신앙에 열심히 있다는 사람들의 문제가 이것입니다. 또한 무작정 열심을 강조하는 위험 또한 이것입니다. 열심이 있기에 자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복음 밖으로 벗어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음을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수많은 재앙을 동원하여 일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돌아가지 않고 자기들의 길만을 갔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러한 상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자기 열심에 빠져 스스로 속고 있고, 부강하고 평안하다는 환경에 빠져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심은 참으로 위험한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자기 열심을 보게 되면 열심을 근거해서 ‘나는 믿음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그런 판단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자신에게 해당이 되는 성경과 해당이 되지 않는 성경으로 구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본문과 같은 내용은 믿음이 없고 열심히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해당이 될 뿐이지 열심 있는 자신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으로 찾는다면, 과연 그 사람의 마음에 죄악 가운데 있고 믿음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예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죄를 더하는 것일 뿐입니다.


 

본문의 재앙을 보면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몸을 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건강과 먹는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 건강의 문제까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기에, 내 수중에 있다고 해도 내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신자가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삶을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행하는 제사는 제사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모스의 책망입니다.


 

신자는 재앙을 보면서 나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앙이 일어난 자들을 위해 성금을 보내는 것이 재앙을 일으킨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성금을 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거듭되는 재앙을 보면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건강이든 돈이든 자식이든, 그 어느 것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는 것이고, 어떤 삶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과 인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도구로 부름 받았음을 믿는 믿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이킴 받은 믿음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지 인간이 실천하는 어떤 행동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행함으로 자신을 과시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믿음의 기준이 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킴 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게 되고 감사합니다. 인간의 열심으로는 불가능한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완악한 우리 마음을 깨뜨리시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게 하시며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되었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돌이킴 받은 마음입니다.


 

이 믿음은 자기 열심, 즉 아침마다 제사를 드리든 삼일마다 십일조를 하든 그것을 기쁨으로 삼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기쁨의 근거는 언제나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 세상에 남겨 놓기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게 있는 욕망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욕망에 붙들린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욕망으로 가득한 눈에 하나님의 일이 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지자의 외침 앞에서 내가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이 아닌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신앙이 아닌 종교로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행함이 곧 믿음의 증거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이 완악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참된 믿음의 길로 가게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