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 받는 자 (단 3:28-30) - 12강

신자의 신앙생활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직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살아 계셔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떠들어 봐야 그것이 믿음의 힘이 되어 주지를 못합니다. 믿음의 힘은 내가 말하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현실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길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에로가 그 세친구도 역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자신들의 현실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하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지금의 형편이 좋고 나쁘고를 따졌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 때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온 것을 보니까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자신들에게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라고 하는 세상의 힘에도 굴복하지 않고 풀무불도 거부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니까 자기들이 할 일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기 위해서 말씀 앞에 바로 서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 세친구의 믿음이었습니다. 자기의 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초월한 사람의 모습이고,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께 붙들려 있기 때문에 나는 세상의 변화와 힘을 붙들려 살지 않고,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뭔가 이루어가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식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회사 취직하는 것을 삶의 커다란 보람으로 여깁니다. 직장에서 승진 잘하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깁니다. 사업이 커지고 번창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사도 발울을 위시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했던 모든 사람들은 삶의 보람이 예수님에 있었지 세상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보람을 무엇을 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보람으로 되어 있습니까? 믿음과 삶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먼저고 세상에서는 생활이 먼저다가 아닙니다. 삶 자체가 믿음이고 믿음 자체가 삶입니다. 날마다 순간 순간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당 보낸다고 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생활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해버리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땅에 것을 부러워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를 부러워합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앞세운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잭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薩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이라"라고 말합니다. 또 30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의 도에서 더욱 높였다'고 말합鎨. 지금 느부갓네살이 다니엘 세친구를 높이고 있는데 이것은 세 친구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구원할 분은 다른 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이라는, 그 하나님이 높임을 받은 것입니다. 세 친구가 불 속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기 위한 신앙이었지만 결국 그들의 그런 신앙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된 것입니다. 신앙이란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 내가 살아 계시다고 믿고 있는 그 하나님이 내 삶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은 세 친구와 같이 세상의 힘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거스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거스린다는 것은 곧 자신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죽고 사는 것은 내 손에서 이미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자는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은혜로 산다'고 하면서도 정작 살아가는 모습은 은혜가 아니라 경쟁입니다. 힘을 얻기 위해서 세상에서 싸우고 경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똑같습니다. 결국 이들은 은혜를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게 하는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로 세상을 사는 자는 힘과 경쟁을 벗어버린 자입니다. 오늘 신자들이 세상에서 보여야 할 것은 선한 덕목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여야 할 것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과 똑같이 땅의 것을 소원으로 삼아버릴 때 이미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나에게 살아계시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 친구가 풀무에 들어갔을 때 신의 아들이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신의 아들은 그들을 풀무에서 건져 내신 것이 아니라 풀무 속에서 그들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풀무의 불도 그들을 삼키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신자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그 안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신자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다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임을 보여줘야 할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 앞에서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잠간이지만 생명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감사하며 은혜로 세상을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