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뜻대로 (단 4:8-18) - 14강

지난 시간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수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은 뭔가 다른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다른 것이란 생명입니다. 세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명을 우리에게 제공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성경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수도 없이 들어온 말씀입니다. 사실 신자가 몰라서 못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신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결국 생명 외에 다른 것은 예수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복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는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은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꾸 다른 것을 기대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안에 세상이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는 신자가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잘되는 것이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직 하나만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생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십자가 안에서 보여야 할 모습도 십자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분이시고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한분되신 예수님,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우리가 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예수님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단지 교회이기 때문에 기본으로 말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 예수님을 믿을 때 병이 낫고, 복을 얻고, 만사가 형통하고, 집안이 평안하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가 관심이 아니라 내가 관심이고, 생명이 관심이 아니라 세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십계명중 맨 처음의 계명을 보면 "너는 나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여호와를 섬겨라는 것이 아니고 나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외에 다른 신이란 하나님말고 또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그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욕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세상에서 잘되고 자기를 지키기 위하여 제사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다른 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은 뭔가 하라는 것은 쉽게 하지만 버리라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뭔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기 생각에 필요해서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버리라고 하니까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없다고 생각되기 전에는 항상 그것에 미련을 두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이 세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아우성 치는 것도 내가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세상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포기되어지지 못할 때 사람은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온 것을 자기의 힘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는 세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내가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지 여호와를 섬겨라고 말씀하지 않고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신약에서도 사도 바울은 그냥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즉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관심 두고,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만을 원하십니다. 하나에다가 다른 것을 부수적으로 추가시키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내안에 있던 기존의 것은 전혀 포기하지 않고 단지 예수를 추가시키는 정도를 가지고 신앙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만을 붙들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는데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모습이 어떠한가하면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라"(11,12)라고 말합니다. 이 나무의 모습이 바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신의 나무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심어 놓은 자기의 나무가 이런 모습으로 자라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내것을 키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 두 개를 다 차지하려는 욕심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느부갓네살에게 있던 마음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느부갓네살은 풀무에서 털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난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저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면 내 나라는 영영한 나라가 되겠다는 욕망이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그 욕망이 드러난 것이 곧 꿈이었던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인간의 소원, 욕망, 포부가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서 인간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결국 인간의 욕망과 소원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땅의 한가운데 세워진 견고하고, 하늘까지 닿은 그 나무를 하늘에서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와서 나무를 베고 가지를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땅의 것은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누구에게든지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의 것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십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세상을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세상을 자기의 포부나 소원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맡기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권세로 세상을 사는 자입니다. 내 권세, 내 힘으로 세상을 살려고 할 때 모든 관심은 자기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고, 우리의 포부를 키워주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스스로의 뜻이 있고 포부가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못할 때는 잘라버리시고 오직 하나만을 건지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