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권세 (단 4:34-37) - 17강

교회가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칠 때 대부분이 좋은 쪽으로 가르치고자 애를 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어려운 일은 쉽게 해결되도록 하시고, 고통도 물러가게 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이런 쪽으로만 가르칠 때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아갈 수 없는데 그 중에 하나가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주셨느냐 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일을 겪게 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그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것이 그 고통과 어려움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고통이 있게 하신 하나님을 제외해 배리고 고통을 없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말한다면 결국 그 사람을 하나님에 대해서 대단한 오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알아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감히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느냐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만큼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내가 이것을 할까요 말까요'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셔서 천국으로 이끄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은 좋은 일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닙니다. 나에게 고통이 되는 쪽으로도 기적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간섭하셔서 천국으로 이끄시는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을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느부갓네살은 꿈 내용대로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게 되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짐승같이 된 느부갓네살의 비참한 모습은 하나님 편에서 주신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고통은 겪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분명 이것은 느부갓네살에게는 은혜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고통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끝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34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고통 속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자가 되었더니 그 고통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의 백성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 땅에 것을 붙들려고 할 때 하나님은 순찰자를 통해서 잘라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에 대한 미련과 소망을 버리고 오직 하늘에만 소망을 두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서 세상의 좋은 것을 얻고자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바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은 하나입니다. 35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나라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자기 영광에 빠지게 됩니다. 바벨론의 부강이 자신의 힘이었던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같이 된 일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37절에 보면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심으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것을 알게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낮추는 자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세상보다는 하나님이 더 좋다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 어떻게 되든 나에게는 하나님만 계시면 상관없다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여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영원한 권세입니다.

인간다운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그 일을 인정하는 것이 곧 복종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런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나에게 땅의 것이 잘려지는 고통을 제공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편안하게 잘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하늘만을 바라고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땅의 것은 언제라도 잘라버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미리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까하는 걱정은 이방인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몸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물론 몸을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일을 하되 그 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익을 믿지 말고, 그 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나에게서 잘라질 수 있음을 알고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