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단 5:17-24) - 20강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계시로 다가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심판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끝나버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원을 두고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계시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배당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소원을 두고 나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나오는 신자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세상에 모든 소원을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미련한 것이고 걸림돌이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가 소원인 자들에게는 지혜로운 것이고 세상의 그 어느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올 때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눈이 열리고,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덜 고생하면서 지금보다 더 편안 삶에만 모든 관심을 두고 산다면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복을 얻는 방법이 기록된 책에 불과하고, 십자가도 단지 나를 천국으로 보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를 발견해 갈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이미 세상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자신이 어떻게 하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에 모든 관심을 두고 나온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도 함께 창조하신 이유는 피조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에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으로 바뀌어버렸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말을 수없이 내 뱉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들은 자기들이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고 헌금하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 되어서 더러운 인간이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고 헌금 조금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인간이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만 받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으로 자리하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의 종으로서 그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전혀 반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시든 나는 할말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그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찬송과 헌금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잘됐다는 부러움을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님에도 세상에서 자신이 크고 위대한 존재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의 고난과 어려움과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영광이 훼손되고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사는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원망과 낙심, 이런 것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반박을 하지 않고 나에게 발생한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유익을 찾고자 힘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불신자보다 잘돼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불신자보다 잘못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안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만약 신자가 이런 생각에 빠져서 살아갈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내가 살든지 죽든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있든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벨사살 왕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자기의 영광으로 삼아버립니다. 벨사살은 자신이 커다란 나라를 다스리고 있고, 많은 재물이 있고, 힘이 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인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자신의 힘이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를 가지고 술을 마시는 이유도 자신은 여호와라는 신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런 벨사살에게 하나님은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게 함으로 경고를 합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느부갓네살의 경우를 말하면서 그 일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겸손하지 못하는가라고 책망을 합니다.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자기 힘으로 삼고, 자기의 영광으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교만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교만을 심판해 버리신다는 것이 벨사살 왕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힘으로 삼지 않는 자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자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무엇이 있든 내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을 아는 자가 곧 무소유인 자이고, 이런 신자가 예수님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당하든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정하고 가기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에 사람들이 반박을 하지 못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당하든'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자기 스스로 선별해 가면서 좋은 것만 골라서 취하고 자기에게 해가 되고 고통이 되는 것은 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누구나가 땀을 흘리면서 고통 속에서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떤 고통 속에 있든 그것은 죄인된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인 것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고,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모든 일에 만족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자의 능력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