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봄 (단 5:25-31) - 21강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심판 속에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읽는다고 해서 아무나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이 주어진 자만 알게 되어 있습니다. 벨사살 왕에게 나타난 손가락으로 쓰인 글씨도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벨사살은 다니엘에게 그 글을 일고 해석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는데 그 글씨의 내용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내용입니다. 메네는 '세어보니 끝났다' 데겔은 '부족하다' 우바르신은 '그리고 나뉜다'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의 뜻은 세어보니 부족해서 끝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나라를 메데와 바사로 나누어 버리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벨사살이 죽습니다.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을 자기의 인생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고 단지 자기에게 큰 나라가 있고 힘이 있다는 것 때문에 교만에 빠져서 살아간 것입니다. 그날 밤에 죽어버릴 인생이 세상의 힘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고, 세상에서 최고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고에 가득히 쌓인 소출을 보면서 그 소출만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서 땀을 흘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이 원하는 성공을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세상에서 몇십년 사는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사는 것과 불편하게 사는 것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차이는 인생이 죽는 순간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옥과 천국이라는 차이는 끝이 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성공한 인생을 산 것입니까? 인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오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인생의 마지막의 순간에 서서 현재를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에 서서 과거를 바라보고 오늘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과연 무엇에 의미를 두고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더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지막을 알면서도 지금 자신이 건강하기 때문에, 젊기 때문에 그 마지막이 멀고 먼 나중의 일로만 여겨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밤에 죽을 인생이 세상의 것이 자기 손에 주어져 있다고 그것으로 교만하고, 자기를 믿는 쪽으로 나간다면 그자가 갈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신자가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바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마지막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에게 손가락으로 '너는 부족하다 부족해서 끝내버리겠다. 네 나라도 나뉘어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벨사살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부족하다는 것을 양적인 의미로 생각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든지 기도가 부족하다고 말할 때도 열심히 없고, 기도의 시간이 적은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벨사살에게 부족하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벨사살에게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벨사살에게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벨사살에게서 찾으셨다면 오늘 우리에게서도 하나님은 같은 것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 벨사살과 같이 찾으시는 것이 없다면, 즉 부족하다면 우리도 끝장난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양심을 찾고, 윤리를 찾고, 도덕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람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이 문제에서 착각을 하게 됩니다.

구원은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하면서 자꾸 사람의 의를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삶은 다니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1장에서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이 준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지 바벨론의 백성이 아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살지만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는 뜻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이 자유로움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합시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아갑시다. 우리의 모든 뜻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벨사살에게 하신 세어보니까 부족해서 끝내버리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의와 사랑으로 채워가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는 복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