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무죄 (단 6:19-28) - 24강

신자가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모습을 보이고, 교회와 연관된 일을 하면 이것은 무조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오늘날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단히 큰 착각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중심으로, 자기 생각으로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성경은 신자니까 일년에 최소한 일독은 해야 하다는 식으로 자신이 신자라는 표로 삼기 위해서 단지 읽기 위해서 성경을 봤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각자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참고 넘어 가도 이것만은 참지 못하겠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으로 일하시는 부분입니다. 신자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오히려 거부하시는데 인간편에서는 자기 생각과 판단만 가지고 하나님의 일로 여기고 열심히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같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신자들이 그런 답답한 모습을 가지고 신앙생활 아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무엇을 중심으로 일하시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여자의 후손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즉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인간이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하나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것을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뭔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이란 내편에서 중요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내편에서 중요한 일로 여기고 하나님을 알기 전에 나에게 중요했던 문제들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여기에는 교회 성장의 문제가 끼여들 수 없습니다. 내 출세 문제가 끼여들 수 없고, 내 사업 문제가 끼여들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중요한 문제들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목적은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 잘되고 못되고는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려주며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로서 세상을 사는 신자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뿐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잘되는 인생이지 내가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이 잘되는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를 배워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다른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어도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으실 것입니다. 예수께 속한 자라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버리고 양보해 버리면 내가 내어놓을 십자가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자들이 다니엘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니엘을 참소 했던 신하들이 사자굴에 던짐 받게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믿음 좋은 사람은 보호하신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죄로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22절에서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라고 말합니다. 천사가 사자들의 입을 봉한 것은 자신이 무죄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이 스스로를 무죄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은 죄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 다니엘은 사람이 정한 금령에 의해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금령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세에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 그것을 무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하들이 사자굴로 던져지고 죽음으로써 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하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다니엘 때문에 자기들의 출세에 지장이 있고, 다니엘이 잘되는 것에 대한 시기심과 경쟁심을 가지고 다니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이 법을 정해서 그 법을 가지고 다니엘을 죄인이라고 하였지만, 세상의 권세에 머리 숙이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 다니엘은 무죄하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판단은 사람이 만든 법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할 때 자연히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사람의 권세에 눌리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다니엘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속에 있고 영생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출세하고 돈 버는 것은 나하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기 힘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붙들므로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서 다니엘을 참소한 신하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드러내십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높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의 법을 정해서 자기 권위를 세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반대하는 것이 곧 죄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 편에서 판단하시고 마지막 날에 그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중심으로만 살아가면 됩니다. 교회가 어떤 법을 정했다고 해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를 대적하는 것이 저주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 저주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했을 때 그는 어떤 상황에 빠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죽든 살든 그것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는 것이 다니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세상의 힘이나 권세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