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평안 (단 10:10-21) - 36강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것은 사람이 자기 영역이라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이 큰 전쟁이 일어난다는 일에 대해서 깨달았을 때 그 일이 다니엘에게 근심이 되고 슬픔이 된 것은 당시 다니엘이 바사에 속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속한 바사가 헬라라는 나라에 의해서 점령된다는 것을 이상을 보고 깨달았을 때 두려움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어서 한 사람에 대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은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주의 모습과 같았고, 다니엘에게 심판주의 모습을 한 분이 나타난 이유는 결국 모든 세상은 힘이 세건 약하건 상관없이 심판주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전쟁은 네편 내편이 있습니다. 내 편은 내가 속해있는 것은 모두 내편이 됩니다. 그리고 내편이 항상 잘되고 커지기를 바랍니다. 또 내편이 잘되기 위해서는 다른 편을 눌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전쟁이라고 하고 요새 말로는 경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네편 내편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편, 세상 편으로 구분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도 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간단히 말하면 '세상을 누구 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물음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야 신자로서 당연하게 '하나님 편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지만 신자가 세상을 하나님 편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할 때 화를 내면서 하나님의 역성을 들어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편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 하나님 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 드린대로 다니엘은 바사왕 고레스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와 바사가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니엘은 바사가 망할 것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니엘에게 사람의 모양을 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다니엘을 만지면서 하는 말이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생각할 것은 평안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누가 평안하라고 말했다고 해서 평안해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평안이라는 것은 어떤 근심거리가 있는데 그 근심거리가 해결됨으로 평안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근심거리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근심거리가 있습니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젯거리에 대한 근심 때문에 다른 근심은 잠시 잊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근심거리로 등장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만 해결되면 평안해질 것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가 해결돼서 얻어지는 평안이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전혀 엉뚱한 문을 두드리고 있는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안이라는 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문제입니다. 결국 평안이라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자유로와 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안을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사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람이 마음편하게 세상을 살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한평생을 근심 걱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평안은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자기 살기 위한 전쟁입니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인데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살면서 평안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은 하나입니다. 평안이 없는 세상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단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안에서'라고 말합니다.

평안은 주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벗어버리지 못하고서는 평안은 결단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일이 해결됐을 때 잠시 평안했다가 또 다시 다른 근심과 걱정에 빠져드는 삶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말은 곧 내 것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것을 주장하는 이상 평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것을 주장하면 그것을 끝나지 않고 남의 것보다 커지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의 것보다 작은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고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평안을 위해서 나의 것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자기 울타리를 포기하고 주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평안을 얻는 길입니다.

나의 것을 끊는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것이 아니다는 것을 위해서는 주인이 누구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내것인줄로만 알았는데 주인이 따로 있음을 발견할 때 우리는 내것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에는 자기 소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창조주로부터 주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지금까지 창조주의 것을 가지고 내것인양 여겼고, 그것을 내 마음대로 키우고자 애를 쓰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내 사업, 내 교회, 내 가정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의 사업이고,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우리는 단지 맡은 자로서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남기라고 맡기지 않았습니다. 단지 맡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실 뿐입니다. 물질적으로 성장하든 성장하지 않든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가 성장하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장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때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내 이름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내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도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시대로 살뿐입니다. 망하게 하든 흥하게 하든 우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평안이 없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세상의 힘을 의존하고자 합니다. 평안과 강건이라는 것은 내가 누구에게 속한자냐는 것을 제대로 알 때 주어지는 현상입니다. 두려움은 내것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내것을 버리면 평안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 나라 사람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사에도 헬라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이 신자에게는 평안이요 강건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평안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