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습 (단 11:1-9) - 37강

사람이 세상을 한평생 살아가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당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신자가 제아무리 험악한 일을 당하고 산다고 해도 절대로 당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갈 때 꼭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은 안가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나름대로 어렵고 험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여기실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설사 욥과 같이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리는 아픔이 있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옥에서 겪게 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 망하는 것과 지옥 가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병들어서 병상에 누워있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그 어떤 수모를 당해도 지옥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신자가 세상을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이 견디지 못할 환경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만 생각하지 지옥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나는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주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고, 세례 받았고,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있고,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지옥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세상을 겸해서 섬길 수 없으니까 나는 세상의 것은 다 잃어도 주님은 포기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있는 세상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천국을 위해서라면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의 일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지옥의 고통보다는 당장 눈앞의 고통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질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고 살기 때문에 세상의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치고 지옥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살아가는 모습은 지옥에 가는 길에 서서 벗어나기를 싫어하고 신앙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천국만 바라보고 살겠다고 하면서도 세상일이 바쁘면 신앙은 뒷전이고,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신앙의 문제는 생각지도 않아 버립니다.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천국 간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1장 전체가 남방 왕과 북방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방 왕 북방 왕이 서로의 힘을 가지고 싸우다가 다시 화친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싸우고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이런 내용들이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세상 모습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커지기 위해서 힘을 기르고, 길러진 힘을 가지고 약한 자를 누르고하는 모습들이 지금 이 세상이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모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유명해지고 이름이 나는 것이 소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다 못해 교회에서도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사람이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힘이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은 언제나 뒤로 쳐지게 마련이고 무시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심이 항상 뭔가 잘하고 유명한 사람에게 쏠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욕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분명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이 행세할 수 있는 땅입니다. 돈없는 자보다는 돈있는 자가 행세하고, 못배운 자보다는 배운 자가 더 행세하고, 권력이 없는 자보다는 권력이 있는 자가 더 행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눌리고 지배당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히 약자의 자리가 아니라 강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신앙은 소홀해지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이유도 세상의 힘을 소유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지금 세상의 모습이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노아 홍수때 멸망당한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멸망의 자리인 세상에 매력을 느끼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차피 마지막 때는 모두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릴 것에 불과한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좀 더 잘난 자식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살아볼까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지옥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왜 지옥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5절을 보면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의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세상은 힘있고 잘난 사람들이 행세하게 되있는 땅이기 때문에 누가 권세를 떨치든 거기에 관심 두지 말고, 또한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6절을 보면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 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대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고 합니다. 남방 왕과 북방 왕의 힘이 서로 비슷할 때는 화친을 해서 자기를 보호하다가 어느 한쪽의 힘이 약해질 때 그 화친을 깨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는 대우하다가 가치가 없어지면 버려버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자에게 자신이 아직도 이용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목사를 청빙할 때 학위등 여러 가지를 따집니다.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는 전혀 보지를 않습니다. 목사니까 어쨌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할 것이 아니냐는 식입니다. 관심은 과연 이 교회를 크게 부흥시킬 수 있는 재능이 있어 보이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선은 교회가 커져야 큰소리 칠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소유나 세력을 믿고 남에게 큰 소리 칠 때 느끼는 쾌감은 참으로 큽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얻은 반면 지옥으로 가게 된다면 그래도 세상 것을 포기하지 못하겠습니까? 신자는 그리스도안에서 주님의 나라에서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세상에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고, 평생을 그늘에 가려서 살다가 조용히 죽는 인생이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바라보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힘있고 유명해진 사람들이 부럽습니까? T.V에 나와서 유명대학에 수석합격한 자식 자랑하는 부모가 부럽습니까? 그나라 그의 의를 바라보고 산다면서 왜 세상에서 잘된 사람이 부러워집니까? 결국 내가 바라보고 산 것은 그나라, 그의 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유명인도, 성공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썩어져서 흙으로 돌아갈 인생에 불과하고 영원한 멸망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비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세상은 힘있는 자가 대우를 받지만 주님의 나라에서는 힘있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같이 섬기는 자가 대우를 받습니다. 힘있는 자를 섬기는 굴복이 아니라 작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때 언제나 자기를 앞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냥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대로 조용히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살려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살아갑시다. 세상이 어떻게 살아간들 거기에 흔들리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만 바라보고 살아갑시다.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살펴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