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의 신 (단 11:36-39) - 38강

사람들은 자기가 해를 입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구라 할지라도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의 적으로 여기고 공격을 합니다. 설사 그 대상이 신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고분고분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인간의 본성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거스리고 반역하는 죄악으로 빠졌기 때문에 이것을 인간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고분고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좋은 길로만 인도해 줄 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도 조건을 내세웁니다.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은 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관심조차 없고, 은혜도 자기를 유익 되게 하는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자기가 지옥 가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믿으면서 할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나 안 살았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단지 주일날 예배당 찾아서 예배드렸고, 헌금했고, 교회서 필요할 때 봉사도 꽤 했다는 것만 머리에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는 전혀 지옥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부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요, 제 아무리 수십년 교회를 다녔다고 해도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천국가겠다, 구원받겠다는 생각 자체가 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천국을 생각하는 것은 단지 지옥은 나에게 해가 되는 곳이니까 피해야 한다는 자기 보호보능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아는 신자라면 막연하게 지옥은 싫으니까 천국 가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나는 마땅히 지옥갈 죄인입니다. 나를 지옥 보내셔도 할말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알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 자기 것을 주장하고 자기 것을 고집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세상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것은 내 힘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불안과 평안은 바로 자기의 힘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이고, 자기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안다면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암보험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 보니까 사람들마다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모르는 암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들은 조금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암이 들어도 얼마든지 수술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생각에 편안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자들은 암보험을 들어놓고 안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암에 걸린다고 해도 치료비는 걱정 없다는 생각에 편안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보니 세상의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 신에 대한 태도도 믿음과 순종이 아니라 우리를 영생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은 거부하고 오직 자기에게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안겨줄 신을 찾아서 공경하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38절에 나오는 '세력의 신'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신은 세력의 신입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신자들까지도 교회까지도 세력의 신을 찾아서 공경합니다. 물론 그 신의 이름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유사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성경에서 자기 스스로를 계시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11장은 모두가 남방 왕과 북방 왕이 서로 세력 다툼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세력 싸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싸움 때문에 신앙 생활이 갈등의 연속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경쟁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세력의 신입니다. 세력의 신은 돈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세상 권세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세상 영광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보다는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적대자의 자리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적대자의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안믿는자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까지도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단지 신자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믿음으로 교묘하게 위장을 하고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우리의 삶에서 얼마든지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절대자로서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런 신자들은 오직 영생만이 힘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인간은 자신이 분명히 죄의 길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신이 자기를 징벌하지 않을 때 그 마음은 담대해 집니다. 신이 자기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요나가 다시스로 내려갈 때 때맞춰 욥바로 가는 배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이 다시스로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36절의 왕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6절은 인간이 하는 일마다 형통했을 때, 즉 자기의 뜻대로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느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왕은 하는 일마다 형통했을 때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모든 신보다 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은 내 힘으로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도 한 이방 왕의 모습이지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말씀일 것 같습니까?

다니엘서 11장의 내용은 옛날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이유를 남방 왕과 북방 왕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높이고 신을 대적하는 왕의 모습을 우리와 상관이 없는 모습으로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원했던 것도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북방 왕과 같은 힘있는 지도자를 원했고, 세상에서 세력을 가지는 것을 원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싫어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즐거워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우리들 마음은 예수님이 자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45절을 보면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토록 믿었던 세상의 힘도 자기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크신 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은혜로 만족하고 사랑에 감사하면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